soul of city

2008/03/24 02:48
시에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나도 오늘 머리카락을 자르고 싶었지만
비가 와서, 또 바빠서, 또 아쉬워서, 또. 그래서 자르지 못했다.
당신은 잘랐다는데, 떨어지는 머리카락에 우리 사랑도 떨어지는 것인지.
머리카락이 많이 길어서 이제 헤어질 때가 되었다는 나의 농담이
참말이 되어 버린 것인지. 도시에 내리는 우울한 비에 재즈 한 곡조 태워서
잔에 담아 마시면 울컥해져 당신 생각으로 난 또 몸서리를 치겠지.
너무나도 태연한 모습으로 날 바라보는 당신에게 무한한 공포를 느끼면서
왜 절실한 마음으로 대하지 못하냐며 나는 당신을 다그치겠지.


래, 사라져 버려라. 대지 위에 고인 빗물을 걷어 차며 나는 슬픔을 배설한다.
벌겋게 치밀어 오르는 분노, 역겨운 향이 나는 불쾌함, 너무 단 그리움.
청바지에 스며드는 배설들이 내 살갗에 닿을 때 여전히 나는 공허한 마음에
존재의 부재로부터 비롯되는 막막한 상실감이란 칼 끝을 꽂는다.

후문 앞 공터에 핀 개나리의 노랑이 내 병을 도지게 한다.
삶이 비극으로 가득 차 있다. 숨 쉴 때마다 비극의 기운을 길게 내 뿜는다.
도시의 꺼지지 않는 불빛처럼, 도시의 영혼은 지금도 그 자리에 있다.


어지고 있는 이 시간에도 너와 나, 도시의 영혼은 지금도 그 자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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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줄리어스

참말로 이별하였다.

2007/10/31 02:51

#.
이별은 결코 불가항력하지 않다.
이별한다는 것은 그 대상 간 현재의 관계가 지속되는 것이
그러지 않을 때보다 예상되는 빈도나 강도가 더 부정적 의미가 있을 때
선택되는 방법의 하나이다. 이는 본인에게 슬기로운 처사이나
대상 간의 특정 관계가 종결된다는 의미를 담기 때문에 최후적인 방법이다.
그러나 많은 관계자들이 이별을 택하기에 앞서 최선책을 강구하지 아니하고
섣부른 이별을 선택하는 경우가 잦다.

따라서 이별을 한 후에 종종 많은 이들이 후회를 하게 된다.


#.
혼자가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참 편한 일이다.
무엇을 하든지 간에 나는 나에게만 집중을 하면 된다.
어떤 의미에서 이것은 전적으로 긍정적인 결과만은 아니다.
왜냐하면 나로부터 시작되어 나에게 귀결되는 에너지의 흐름속에
어쩌면 나르시시즘, 무기력, 무비판, 수동적, 황폐화, 우울함 등
스스로를 옭아매는 부당한 세력이 끼어들었을 경우,

자신이 이를 온전하게 치유할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
이별을 겪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특정한 객체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경우가 있다. 엄밀하게 따져볼 때 그들의 관계가 종결하지
않았을 때에도 이런 현상이 발생한다. 그 때 의미 부여된 개체는
제 성질을 잃지 않고 이별 후에도 유지되는 경우가 많다.
비단 이러한 생성뿐만 아니라 이별 후에야 비로소 창조되는 개체들도
더러 있다. 이 때 사람들은 애절한 감정을 겪게 되고 의미 부여된
개체는 추억이라 명칭 한다. 추억의 객체는 물체, 사상, 음악, 향 등
추억의 주체로서 존재하는 이와 관련된 모든 총체에서 다양하게 나타난다.
추억은 부여된 의미를 사유하는 과정에서 만남을 영위하던 시점을
회상하게 만든다. 이 때 긍정적인 혹은 부정적인 사유를 하게 되는 근거는
추억의 의미가 주체에게 전달됨에 따라 생성되는 감각이다.

추억으로 말미암아 그리움을 느낄 때 이를 긍정적인 사유로 봐야 될 것인지는
잘 알지 못한다. 적어도 미워하는 사람에게 그리움을 느끼지 않으니 그 타당성이
있어 보이긴 하다. 그리움이 무엇이든 간에 서럽긴 매 한 가지다.


#.
현대 의학이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여 이제는 기억을 조작하는 것쯤은
심리학에서 쉬운 편에 속한다. 그러나 기억을 지우는 것은 조금 다르다.
물론 전자도 윤리적인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으나 후자는 더욱 더 그러하다.
윤리적인 문제를 떠나 실제로 기억을 지우는 수술을 한 뒤 수술의 대상이 되는
기억 외에 특정한 기억이 부가적으로 지워졌는지에 대한 조사는 완벽하게 이뤄질 수 없다.
따라서 이는 현대 의학이 실제로 가능하다고 해도 시술되어서는 안된다.
결국 이별을 한 대상을 완벽하게 잊는 방법은 없다.
기억해 내지 못한다고 할 때 이를 두고 잊었다고 표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왜냐하면 어떠한 방법으로든 간에 기억을 재생산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설령 조작된 기억이라고 할 지라도 말이다.

그래서 헤어진 이를 잊을 수 없다. 습관처럼 여기던 것을 버림으로써
덜 생각할 수는 있다. 어찌 잊을 수 있으리요, 잊은 척 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은
새로운 만남에 대한 불문의 예의일 뿐 그것이 합리화되지는 않는다.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이 잊음의 또 다른 표현이라면 그러하라. 잊어라. 잊었다고 말하라.
허나 결코 기억에서 지울 수는 없다. 평생토록 안고 가야 하는 짐으로 존재하는 까닭은
그만큼 경솔한 행동에 대한 불멸의 추궁인 셈이다.


#.
티라미스를 먹을 때마다, 클라레를 마실 때마다 너를 기억하리.
봄날 환한 햇볕을 쬐일 때마다, 여름 시원한 빗줄기가 내릴 때마다,
가을 만개한 구절초 향내 맡을 때마다, 겨울 설국의 능선을 탈 때마다,
나 너를 기억하리. 진심으로 정을 주었던 너를 기억하리.

내일을 모르면서 영원을 약속한 겁없던 나의 오만을 어여삐 여기고,
울리기를 제 망나니 꽃 꺾듯 쉬이 하던 나를 이해로 안고,
배려하기를 강가의 모난 돌처럼 드물어도 귀히 날 만지는,
나 너를 기억하리. 사라지지 않는 정으로 너를 기억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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