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겨울의 끝자락이 오면 나는 외로워진다.
작년에도, 그 이전에도, 어김없이 올해도
나는 외롭다.
몇 해 전에는 에쿠니 가오리의 책을 읽었고
올해 나는 마르케스의 책을 읽었다.
그것들은 나의 외로움을 달래 주지 않는다.
타들어가고 말라 비틀어진 내 마음의
앙상한 나뭇가지 위에 장식하는 종처럼
어울리지도, 존재근거도 느끼질 못한다.
벽에 기대어 있는 스노보드를 보며
누구와 탈지를 고민한다.
그녀와 만나고 있을 때는 당연히 그녀와
갔을 스키장이지만 지금은 누구와 가야 하는가?
나는 그녀가 없이는 스키장도 못가는 어리석은 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혼자 지내길 바래왔었단 말인가?
나는 다른 남자들이 이별을 말하면서
"나보다 더 좋은 남자를 만나길 바란다." 또는
"나는 네게 너무도 부족한 사람이라서 헤어진다." 라는
터무니 없는 변명에 대해서 코웃음이 난다.
대학 친구가 이런 변명을 하며 헤어짐을 전하였다고
내게 말하였을 때, 나는 이렇게 답했다.
"너는 직장에 면접을 보러 가서 면접관에게,
'옆에 있는 사람이 저보다 더 잘 일할 것 같으니 이 사람을 뽑아 주십시오.'
라고 말해라."
착한 역할, 아니 착한 척은 하고 싶지 않았다.
더는 사랑을 못할 것 같았고 그 사람도 날 더이상
사랑하는 것이 쉬운 것이 아니란 걸 우리 서로는 알고 있었다.
더이상 서로의 마음에 낼 생채기도 없음을,
아주 가늘고 약한 끈에 의지하고 있었던 우리 관계의 마지노선이
그 필요성을 잃어 버리고 이제 멀어져야 함을 우리 서로는 알고 있었다.
어떻게, 언제, 누가 이별을 당당하게 말할 지를 고민해야 했다.
CANT 냐, DONT 냐의 질문. 사랑이 동나서 멈춰버린 우리의 자동차에
연료를 주입하지 못하냐, 혹은 않느냐에 대해서 나와 그녀는 어떤 말을 할까?
감정이 과다될 때가 있다. 나는 이를 주의하려고 노력한다.
이 순간, 이 폭발하는 내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지게 되면
나는 무척이나 힘들어진다. 나를 감싸고 있는 모든 시간은
정지해 버리고 깊은 정적만이 남는다. 시각은 한 곳에 집중이 되고
그것이 흐릿하게 보일 때 즈음에는 청각이 반응을 한다.
음악소리가 귓가에서 크게 들리면 내 감각은 통제 가능한
범위를 넘어선 것처럼 보인다. 모든 감각에서 의미가 느껴진다.
보이는 것, 들리는 것, 만지는 것, 맡게되는 것, 그리고 상상하는 것이
나를 힘겹게 한다. 왜냐하면 언제나 내 감각의 종착역은 외로움이니까.
보이는 모든 것은 날 외롭게 하고 들리는 모든 것은 날 외롭게 한다.
혀 끝에 느껴지는 커피의 쓴 맛도 외롭고, 손 끝에 느껴지는 사진의
입자들이 날 외롭게 한다. 이 지긋지긋한 외로움. 외로움. 외로움.
카메라에 85MM 를 마운트하고 무작정 거리로 나선다. 시간은 새벽 2시다.
갑자기 엘리베이터의 등이 꺼진다. 완전한 어둠이다.
무섭지 않다. 지금 당장 엘리베이터가 추락한다해도,
두 번 다시 문이 열리며 빛이 스며 들지 못한다고 해도,
무섭지 않다. 어차피 나는 지금 어둠이니까.
사람이 많은 곳으로 간다. 그 속에서도 나는 여전히 공황 장애를 겪는다.
가로수 사이마다 불이 켜진 도로를 따라 아무런 생각을 두지 않으려 애쓴다.
그러나 창 밖으로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들,
아! 너도 지금 이 스쳐가는 시간에서 나와 멀어지며 살아가고 있구나.
"우리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또 나는 외로운 시간 속에서 살아가겠지만
또 당신도 그리운 시간 속에서 살아가겠지만
나도, 당신도, 그대도, 우리도, 모두 외로운 것을.
모두 외로워 사랑을 찾지만 결국 다시 외로워 지는 것을.
이 필연의 과정을 겪으며 살아가는 것을.
안녕, 외로움이여, 내 그리움이여, 안녕!
작년에도, 그 이전에도, 어김없이 올해도
나는 외롭다.
몇 해 전에는 에쿠니 가오리의 책을 읽었고
올해 나는 마르케스의 책을 읽었다.
그것들은 나의 외로움을 달래 주지 않는다.
타들어가고 말라 비틀어진 내 마음의
앙상한 나뭇가지 위에 장식하는 종처럼
어울리지도, 존재근거도 느끼질 못한다.
벽에 기대어 있는 스노보드를 보며
누구와 탈지를 고민한다.
그녀와 만나고 있을 때는 당연히 그녀와
갔을 스키장이지만 지금은 누구와 가야 하는가?
나는 그녀가 없이는 스키장도 못가는 어리석은 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혼자 지내길 바래왔었단 말인가?
나는 다른 남자들이 이별을 말하면서
"나보다 더 좋은 남자를 만나길 바란다." 또는
"나는 네게 너무도 부족한 사람이라서 헤어진다." 라는
터무니 없는 변명에 대해서 코웃음이 난다.
대학 친구가 이런 변명을 하며 헤어짐을 전하였다고
내게 말하였을 때, 나는 이렇게 답했다.
"너는 직장에 면접을 보러 가서 면접관에게,
'옆에 있는 사람이 저보다 더 잘 일할 것 같으니 이 사람을 뽑아 주십시오.'
라고 말해라."
착한 역할, 아니 착한 척은 하고 싶지 않았다.
더는 사랑을 못할 것 같았고 그 사람도 날 더이상
사랑하는 것이 쉬운 것이 아니란 걸 우리 서로는 알고 있었다.
더이상 서로의 마음에 낼 생채기도 없음을,
아주 가늘고 약한 끈에 의지하고 있었던 우리 관계의 마지노선이
그 필요성을 잃어 버리고 이제 멀어져야 함을 우리 서로는 알고 있었다.
어떻게, 언제, 누가 이별을 당당하게 말할 지를 고민해야 했다.
CANT 냐, DONT 냐의 질문. 사랑이 동나서 멈춰버린 우리의 자동차에
연료를 주입하지 못하냐, 혹은 않느냐에 대해서 나와 그녀는 어떤 말을 할까?
감정이 과다될 때가 있다. 나는 이를 주의하려고 노력한다.
이 순간, 이 폭발하는 내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지게 되면
나는 무척이나 힘들어진다. 나를 감싸고 있는 모든 시간은
정지해 버리고 깊은 정적만이 남는다. 시각은 한 곳에 집중이 되고
그것이 흐릿하게 보일 때 즈음에는 청각이 반응을 한다.
음악소리가 귓가에서 크게 들리면 내 감각은 통제 가능한
범위를 넘어선 것처럼 보인다. 모든 감각에서 의미가 느껴진다.
보이는 것, 들리는 것, 만지는 것, 맡게되는 것, 그리고 상상하는 것이
나를 힘겹게 한다. 왜냐하면 언제나 내 감각의 종착역은 외로움이니까.
보이는 모든 것은 날 외롭게 하고 들리는 모든 것은 날 외롭게 한다.
혀 끝에 느껴지는 커피의 쓴 맛도 외롭고, 손 끝에 느껴지는 사진의
입자들이 날 외롭게 한다. 이 지긋지긋한 외로움. 외로움. 외로움.
카메라에 85MM 를 마운트하고 무작정 거리로 나선다. 시간은 새벽 2시다.
갑자기 엘리베이터의 등이 꺼진다. 완전한 어둠이다.
무섭지 않다. 지금 당장 엘리베이터가 추락한다해도,
두 번 다시 문이 열리며 빛이 스며 들지 못한다고 해도,
무섭지 않다. 어차피 나는 지금 어둠이니까.
사람이 많은 곳으로 간다. 그 속에서도 나는 여전히 공황 장애를 겪는다.
가로수 사이마다 불이 켜진 도로를 따라 아무런 생각을 두지 않으려 애쓴다.
그러나 창 밖으로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들,
아! 너도 지금 이 스쳐가는 시간에서 나와 멀어지며 살아가고 있구나.
"우리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또 나는 외로운 시간 속에서 살아가겠지만
또 당신도 그리운 시간 속에서 살아가겠지만
나도, 당신도, 그대도, 우리도, 모두 외로운 것을.
모두 외로워 사랑을 찾지만 결국 다시 외로워 지는 것을.
이 필연의 과정을 겪으며 살아가는 것을.
안녕, 외로움이여, 내 그리움이여,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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