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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카를 보고 있느라면 名品 이란 것은 이것을 두고 말하는 것임을
절실히 깨닫는다. 티타늄 바디의 탄탄함과 정교하면서도 둔탁하지 않고
매끄러우면서도 흐트러짐이 없는 디자인에서 왜 사람들이 이런 것을
수 백만원의 비용을 지불하며 구입하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해소된다.


라이카는 단지 사진을 찍기 위한 카메라가 아니다. 그 이상의 무언가가 존재한다.
혹자는 이를 두고 감성이니, 가치니, 역사 등의 단어를 갖다 붙인다.
나는 이 문제에 대해서 아무리 고민을 해보아도 정확한 답을 대지 못하겠다.
감성도, 가치도, 역사도 모두 맞는 말 같다. 따라서 하나의 단어만으로 정답을
대는 것은 너무도 힘든 일이다. 어쨌든 빨간 원안의 LEICA (LEITZ) 는
특별한 매력이 있는 것이다. 앙리 까리띠에 브레송, 로버트 카파, 엘라이 리드가
목에 걸고 다니면서 보여줬던 그 빨간 동그라미가 이제 내 목에 걸려져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사진 찍는 재미 이상의 쾌감을 준다. 멍청하게도 이런 쾌감이
예술적인 환희와는 전혀 상관없는 것이고 무척 유치하며 나의 사진적 수준의 바닥을
여과없이 보여주는 부끄러운 것임이 틀림없지만, 좋은 건 좋은 거다.


캐논의 SLR 을 쓰면서 렌즈의 조리개 수치에 대해서 많은 집착을 하였다.
단렌즈는 최소 1.4 의 조리개, 줌렌즈는 2.8 의 조리개 값에 대한 고집은
비싼 L 렌즈만을 고집하게 만들었다. 과연 조리개 수치가 보장하는 결과물의 값은 어떠한가?
35MM 1.4 L 렌즈를 쓰면서 최대 개방에서의 깨끗한 해상력에 "역시 대단한 놈이군." 이라며
잘 샀다고 스스로 격려한 적이 있다. 하지만 라이카 35MM 즈미룩스(F 1.4)의 글로우(GLOW) 를 보며
사진의 개방 심도는 정말 필요 없는 것임을 느낀다. 심도를 넘어선 결과물의 환상적인 표현력을
보며 어찌 라이카가 세계 최고의 렌즈임을 동의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또 즈미클론(F 2.0)의 흑백사진에서의 계조를 보면서 마치 갓 눈이 내려 아무 흔적도 없는 산을
맨 먼저 보드를 타고 내려 올 때 갖게되는 처녀성의 획득이라는 묘한 기분을 느낀다.
즈미클론의 흑백 계조는 촬영자인 나만이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셔터를 누르는 순간의 기대되는 결과물의 계조를 완벽하게 표현하였는지에 대한 여부는
오직 나만이 알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기대를 철저하게 지켜주는 렌즈가 즈미클론이다.
나만이 본 것, 나만이 기대하는 것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또 실망 없이 완벽하게 표현해 준다.
일포드 필름 위에 투영되는 빛은 모두 즈미클론을 통한다. 그래서 즈미클론. 그래서 라이카.


어디 그 뿐이랴, 1세대부터 현행(CURRENT) 세대의 렌즈까지. 같은 35MM 2.0 렌즈라고 할 지라도
세대 별로 그 느낌이 다르다. ASPH(비구면렌즈) 의 현행은 색감도 좋고 해상력도 좋다.
확실히 올드렌즈는 현행렌즈에 비해서 해상력이 떨어진다. 하지만 라이카는 캐논의 그것처럼
MTF 차트를 올려 놓고 해상력을 따지지 않는다. 색 표현력과 계조의 재현력을 본다.
해상력은 기본적으로 우수하다는 전제가 깔려 있어서 그런 것일수도 있고, 설령 약간 BLUR 하다는
느낌을 최대 개방에서 받을지라도 이 또한 결과물의 매력으로 포장을 해 버리는 라이카 유저들에 의해서
가려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또 흑백 결과물은 현행 렌즈가 올드 렌즈의 값을 넘지 못한다.
오래된 렌즈라고 해서 천대를 받지 않는다. 오히려 현행보다 더 인기가 좋다. 그래서 라이카.


라이카 M7 에 35MM 즈미클론 ASPH 를 물려 놓고 있으면 하나의 예술품이란 생각마저 든다.
사진기가 뿜어 내는 사진보다 그 메커니컬 자체만으로도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해서
오묘한 아우라에 수준 낮은 나의 결과물들이 미안스럽다고 생각될 정도로 때로는 열등감도 느낀다.


라이카를 쓴다는 것은 35MM 의 역사를 쓴다는 말이 있다. 135포맷, 설령 SLR 이 아닌 RF 라고 할 지라도
그 말이 맞는 듯 싶다. 왜 오랜 세월동안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라이카를 사용하고 또 사랑하는지
나도 이제는 조금은 알 것 같다.


LEITZ, CAMERA, ..... LE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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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아타, atta kim

2008/02/06 11:05

얼마 전에 비칼 형이 브레송의 사진을 보며
이미 수십 년 전의 사진가가 찍은 이런 사진을
오늘의 우리는 따라하고 있다는 말을 했지요.

스냅의 '결정적 순간'으로서 브레송의 사진이
여전히 인기가 좋은 것은 아마추어들이
사진을 취미가 아닌 예술로 느낄 때
가장 먼저 발걸음을 내딛는 부분이 바로
스냅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을 합니다.

저는 좀 더 나아간 시선으로 현대 사진계의 사조로서
김아타 선생님을 소개하려 합니다.

김아타 선생님을 소개하기 전에
Andreas Gursky 를 언급할 필요가 있습니다.

Andreas Gursky 는 현대 사진 예술에 있어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작가입니다.
그의 작품 한 점이 10억원에도 팔린다니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시겠지요?

"대형사진은 Andreas Gursky 를 위해 발명되었다." 라고
할 정도로 그의 프린트는 대단히 훌륭합니다.

다큐멘터리처럼 보이지만 디지탈 작업을 거쳐서
거리감, 공간감 등을 작가가 의도한 바로 조작을 하기 때문에
순수 다큐멘터리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상업사진이라고 부르며 상당한 고가에 작품이 거래되고 있지요.

김아타 선생님께서도 현대 미술이 자본의 논리와 절대 무관하지 않고
자본주의 시장논리와 함께 간다고 말씀하셨지요.
작가들은 중용, 중도를 잘 지켜서 상업성과 작품성의 경계에서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기를 거듭 충고하셨습니다.

김아타 선생님을 뵈면 Andreas Gursky 와 닮은 꼴이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8x10 의 대형으로 촬영하여 180x200 으로 인화한 결과물도 그렇고
뉴욕에서 엄청난 인기를 받는 것도 비슷합니다.

세상 모르고 작가주의만 빠지는 것도, 돈에 미쳐 상업에만 빠지는 것도
옳지 않다는 입장도 비슷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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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김아타 선생님의 'on-air' 프로젝트입니다. 수 많은 인물들의 사진을 촬영한 후에
이를 합성하는 방법을 통해서 '인간' 이란 주제를 다룬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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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장 모두 '뮤지엄' 프로젝트의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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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뉴욕 타임스퀘어에서 촬영된 사진입니다. 역시 8x10 카메라로 촬영되었으며
8시간 장노출을 한 사진입니다. 노출 내내 카메라 뒤에 앉아서 제자인 아로가 주는
햄버거를 드시며 기다리신 모습이 생각나네요. 국내 사진 작품중에 가장 고가인 1억 9천만원(21만 달러)에
팔린 작품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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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뉴욕에서 촬영된 'On air' 프로젝트입니다. 존재하는 것은 모두 사라짐을 표현합니다.
고정되어 있고, 천천히 움직이는 것은 사라지는 것 또한 그리함을 나타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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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모택동의 얼굴을 얼음으로 조각한 후에 시간이 지남에 따라
녹아 버리는 얼음을 작품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권력의 부질없음, 인간의 죽음을 사진으로 말하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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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SEX 라는 제목의 작품입니다. 기존의 작업 방식과 비슷합니다.
뉴욕 갤러리에서 5천 3백만원에 팔린 작품이지요.




뉴욕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한국 사진작가로 김아타 선생님이 있습니다.
그 어떤 다른 작가도 요시 밀로 갤러리에서 전시를 할 수 없었습니다.
또 ICP 의 한 쪽 벽을 할애하여 대형 사진을 건 것도 놀라운 일입니다.
최고의 사진 전문 출간사 아파처(APERTURE)에서 책을 출간한 동양 유일의 작가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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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거제 출생
1997년 올해의 작가상
2000년 휴스턴 포토페스티벌 한국 대표
2001년 파이돈 선정 세계 100대 사진가
2002년 상파울로 비엔날레 한국 대표
2004년 아파처(APERTURE)에서 사진집 발행
2006년 뉴욕국제사진센터(ICP)에서 개인전을 연 최초의 한국 작가
2007년 도이체 보르세 포토그래피(유명한 사진작가 시상식) 후보 (아시아 최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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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이렇게 사투리가 심할 줄이야! (크게 보기를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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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카메라

2008/01/24 04:31
언제나 PMA 와 포토키나가 열릴 때마다
사진가들의 마음은 두근두근해진다.

새로운 카메라, 렌즈가 출시되어
우리의 마음을 -소유욕- 얼마나 채워줄 지에 대한
기대심리가 생기기 때문이다.

열화당 사진문고는 한 권 사는 것도 아깝다 생각하지만
수 백만원 짜리 새 카메라는 아깝지 않고 잘 샀다고 합리화하는 것이
우리다. 아니, "나를 비롯한 소수" 인가?


새 카메라를 사면 기존에 쓰던 카메라는 퇴물이 되고 만다.
손 때 묻고 가장 쓰기 편하고, 훌륭한 결과물을 뽑는 카메라에서
'편했고, 좋았던' 의 과거형이 되어 버린다.

그리고 새 카메라를 애지중지 다룬다. 매일 슈팅을 하고 나서
초극세사로 잘 닦아 보관함에 넣어둔다. 아무렇게나 막 굴리던
헌 카메라와는 다른 대우다. 분명 다른 대우다.

시간이 흐르다 보면 옛 카메라 생각이 난다.
새 카메라라고 모든 점이 옛 카메라의 그것보다 낫지는 않다.
쓰다 보면 옛 것이 더 편하다고, 좋다고 느끼게 된다.
다시 '과거형' 에서 '현재 진행형' 으로 복귀한다.


다음 PMA 와 포토키나가 열릴 무렵이면 그것도 헌 카메라가 된다.
그리고 또 바꾼다. 과거형이 되고, 현재진행형이 되었다가, 또 다른 과거형이 추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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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줄리어스
눈을 떠보니 나는 26살이 되었다.


'~이 달라졌다' 라고 말하는 것이 무색할 정도로
거의 모든 것이 변함 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것이 균형적인지는 잘 모르겠다.

이를테면,
나는 여전히 운동을 시작하지 않았으며
백년의 고독을 읽지 않았고
자야할 시간에 자지 않았다.




며칠 전에 동식 형을 만났는데 사진예술에 대한 수준이
상당히 높아졌음을 느꼈다.

일우 김홍희 선생님 아래에서 사진을 배우는데
아무래도 김홍희 선생님께서 다큐 작가이다보니
그의 영향을 받은 동식 형도 스냅과 다큐에서 작품성을 추구하고 있었다.

또 그 이면에는 살롱 사진가에 대한 저항할 수 없는(?) 비판을 하면서 말이다.



나는 잘 모르겠다.

여전히 나는 살롱 사진가이지만, 이런 태그가 마음에 들지 않은 적이 없다.
세상의 아름다움을 잡아내는 것이 나의 목적이라면 나는 인물에게서 그것을
찾아내는 것 뿐이다. 보다 더 세밀하게 말하자면 인물의 시각적 표현을 통해서
아름다움을 말한다. 그게 살롱 사진가가 받는 힐난의 주다.

"왜 포장된 아름다움을 찍느냐?" 라는 질문과 함께.



나는 다큐멘터리는 찍지 않는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찍지 못한다.

다큐멘터리를 통해서 아름다움을 표현하기에는 나의 역량이 한참 부족하다.
연필도 잡지 못하는 유아에게 서슬 퍼런 칼을 맡길 수는 없지 않은가?



예술이 뭘까?

아름다움이란 절대적이고 완벽한 상태라고 생각한다.
슬픔에서도 아름다움이 있고, 절망에서도 아름다움이 있다.
아름다움은 시각적인 것에서 비롯되는 소소한 감정에 그치지 않는다.

타인의 고통을 그토록 절대적이고 완벽하게 표현하여 아름답다고 느끼게 만든다면
완전하게 그 고통을 전이시키는 것이다. 나는 그럴 자신이 없다.

왜냐하면 고통을, 슬픔을, 분노를, 타인에게서 비롯되는 이런 것들을
내 것으로 흡수하여 표현하기에는 나는 내 것 조차도 추스릴 수 없기 때문이다.




동식 형이 말한다.

"포장이 아주 잘 된 선물 상자를 열어 보니 그 안에는 아무 것도 없더라."




여전히 균형적이지 못한 나의 삶이지만
적어도 올해는 사진적 변화를 추구할 것이다.



포장지를 열었는데 아무 것도 없으면 그 얼마나 허무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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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줄리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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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사진 예술을 하는 선배를 만나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정보통신윤리위원회 이야기와 레드리본제, 레이소다의 카테고리 폐쇄에 이르러서는
너무도 화가 난 적이 있습니다.

예술과 외설에 대한 차이를 내게 묻는다면
나는 서슴없이 "작가의 양심"이 그 답이라고 말하겠습니다.

일단 온라인, 포르노 사이트가 아닌 이상 포스팅된 작품이라면
우리는 작가의 양심을 믿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작가의 양심을 믿지 않고 개인적 경험과 비좁은 가치관에 근거하여
작품을 비난하고, 봐야 될 나이를 규정하며, 심지어는 법에 어긋난다며 처벌을 내리기도 합니다.

이 어찌 가당한 말입니까? 예술을 우리의 편협한 가치관이 탄압하고 있습니다.

어머니의 젖을 무는 아이의 사진에서 노출된 어머니의 유두와
젊은 여성의 젖을 무는 남자의 사진에서 노출된 그녀의 유두는 무엇이 다르단 말입니까?

전자는 食 이고, 후자는 性 이라서 그런 것입니까?

섹스는 인간의 본질적 활동에서 食 과 더불어 가장 중요한 행위입니다.
衣 와 住 보다 중요한 부분입니다.

반면에 살인과 같은 폭력을 다루는 문제에 대해서는 얼마나 관대합니까?
총으로 사람을 죽이는 게임은 미성년자도 즐기고 있으며 대중매체에서도 흔히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여성의 특정 신체 부위를 性으로 연결시키는 것은 개인의 경험과 연관이 있습니다.
이 경험이라는 것은 한국에서 살면서 겪게 되는 문화적 자극의 결정체입니다.

유전적인 구조로 남성은 시각적인 자극에서 성적인 흥분감을 취하게 됩니다.
또 가치관이 완전히 자리잡을 때까지, 아니 섹스를 했다고 말을 해도 사회적으로 비난을 받지 않을
나이가 될 때까지 섹스라는 코드를 가진 매체, 음란물이라 지칭되는 사진, 그림, 음악, 글 등은
저속한 것이며 지양해야 될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지닌 채 성장을 합니다.

나이가 들어서도 고착된 가치관은 변하지 않아서 자신의 아이들에게도 동일한 교육을 시킵니다.
그리고 여성의 유두가 노출이 된 사진을 미성년자가 보지 않도록 환기를 시킵니다.
이렇게 말하면서요. "교육 상 좋지 않아요."

사람은 자신의 가치관이 틀렸다고 생각하기 쉽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자신 뿐만 아니라
사회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통념으로 생각하는 것은 더욱 더 그렇습니다.
유교 사회에서 폐쇄적인 성 문화를 가진 한국은 레비스트로스가 야생의 사고에서 말한 것처럼
"불쌍한 존재는 바로 동아시아의 남자들" 투성이의 나라입니다.



시각적인 성적 자극은 유방, 성기 등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어떤 이는 여성의 발목을 보며
흥분을 하고 또 누군가는 목선, 손가락 심지어는 귓볼을 보고도 성적인 자극을 받습니다.
그런데 목선을, 발목을, 손가락을 찍은 사진은 왜 미성년자 관람불가가 되지 않습니까?

절대 다수는 유방과 성기를 보며 성적인 흥분을 하기 때문이라는 말도 안되는 오류가 여기에 존재합니다.

남성의 이러한 페티쉬(fetish) 성향은 유전적이고 본능적인 것입니다. 액셀레이터를 밟으면
전진하는 차를 두고 왜 앞으로 가냐고 물을 수는 없습니다. 앞으로 가지 않기 위해 브레이크를
밟아야지, "앞으로 가지 마" 라고 명령을 하는 것은 우스운 짓 아닙니까?

특정한 부분이 사진에서 다뤄진다고 할 때 그것을 섹스로 연결시켜서 성적으로 흥분하는 것은
관람자의 수준에 달려 있습니다. 누드 사진을 보며 자위를 하기로 마음 먹은 사람은
그 수준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에게는 이 세상 모든 누드 사진은 외설이오, 음란물입니다.

우리가 작가적 양심을 믿는 것처럼 작가도 우리에게 관람자로서의 최소한의 양심을 기대합니다.



일전에 제가 최근의 사진 이해의 경향은 작가의 의도나 지향점에 주의하지 않고
관람자 스스로의 무의식 상태에서 발견하는 아름다움이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물론 작가의 의도를 무시해선 안 됩니다. 허나 무엇보다도 경계해야 할 것은
독단적으로 자의(自意)적 해석을 해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자신이 갖고 있는 가치관에 근거하여
마음대로 사진을 평한다면 그 어찌 바보같지 않을 수 있습니까?

단맛을 느끼지 못하는 혀를 가진 이가 설탕을 보고 짜다고 말하니 웃지 않을 수 있습니까?



견월망지(見月望指)라, 달을 보라고 손짓을 하였더니 손가락을 본다는 말이 있지요.

예술로 포스팅된 사진을 포르노 사이트에 게재되는 사진으로 읽어 버리는 사람은
더이상 담론할 가치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을 패럴리즘이라고 합니다.

패럴리즘으로 사진을 엉망으로 해석하는 이를 두고서 작가적 양심을 믿으라고, 또 관람가적 예의를
기대할 수 없음은 무척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첨부된 사진은 아라키 노부요시의 사진입니다. 여성의 성기를 꽃과 입으로 자주 표현합니다.
여성의 성기가 더럽습니까? 오직 섹스로만 생각이 집중됩니까?

탄생과 죽음과 욕망과 기쁨과 쾌락과 배출의 객체로서는 느껴지지 아니한가요?

음모와 머리카락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자라는 곳이 다를 뿐 구태여 전자는 성적인 자극의 매개체라고
스스로 인식화된 이미지를 머릿속에서 그려가며 사고를 편협하게 해야만 할까요?



개인적으로 김용호 사진작가를 참 좋아합니다. 그가 운영했던 카페 드 플로라도 무척 좋아하지요.
이혜영의 누드 사진을 찍은 작가로도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패션사진계에서는 도프앤컴퍼니, 김용호라면
둘째가라 말하기 서러울 정도로 유명한 분입니다.

얼마 전에 김용호 작가께서 발레리나 김주원씨의 누드를 찍었습니다.
덕분에 김주원씨는 발레리나의 명예를 실추하였다는 명목으로 감봉을 받았지요.

춤으로 몸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발레와,
사진으로 몸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은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끝으로 "몸" 사진전을 여신 김용호 작가님의 한 말씀 적고 긴 글 마칩니다.


"인간의 몸은 근원적으론 생명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하며, 나아가 환경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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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줄리어스
나는 퍽 어리석었다.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문고판 한 권만 끼고 다니면 대학생의 자부심을 느꼈고, 원문으로 카뮈의 소설 몇 줄을 겨우 해독하면서 불문학을 한다고 생각했다. 마르크시즘·실존주의·큐비즘 등의 개념이나 프로이트·하이데거·사르트르 등의 이름들을 멋도 모르고 지껄이면서 지식인으로 자처했다. 그리고 우리는 몰려다니면서 학생증을 맡기고 소주를 들이키며 떠들어댔고, 아니면 다방 구석에서 꽁초를 태우면서 문화인 흉내를 냈다.

졸업장을 받고 나는 당황하기 시작했다. 전공에 대한 것은 고사하고라도, 나는 기초적인 지적 교양조차도 갖추지 못하고 있었다. 아무 것도 모르고 할 수도 없는 자신의 앞날이 깜깜했고, 낭비한 대학 생활에 무한한 공허감을 느꼈다. 그후 나이가 들어서 외국을 방황하고 다시 학생 생활을 하면서 내가 지적으로 얼마나 바1보스러울 만큼 유치한가를 다시 뼈저리게 느꼈다. 돌이킬 수 없는 귀중한 몇 년을 낭비했다는 생각에 분노와 뉘우침이 엇갈렸다.

이유와 핑계가 없는 것도 아니다. 50년대 초반에 대학을 다녔던 우리 세대는 불우했다. 생존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을 만큼 우리는 가난과 혼돈, 불안과 전쟁 속에서 불행했다. 교과서가 없어 손으로 스텐슬지에 책을 베껴 등사해서 공부해야 했던 우리들이 특권층으로 생각될 형편이었다. 뜻이 있었더라도 책을 구해 읽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 나라 사정은 사뭇 다르다. 잃어버린 우리 세대에 비한다면 오늘의 학생들은 거의가 물질적으로 부유한 편이다. 교수의 수준도 무척 높아져서 뜻만 있으면 얼마든지 배울 수 있고, 마음만 있으면 책도 웬만한 수준의 것은 쉽사리 구해 읽을 수 있다.

지금 내가 학생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나의 전공이 무엇이든 상관없이 우선 교양이 될 만한 책들을 읽기에 시간을 아끼지 않겠다. 일단 대학을 떠나면 전문적 직업에 바빠져야 하기 때문에 교양을 쌓기 위한 독서 시간을 얻기 어렵다.

현대 사회는 갈수록 더 전문적 지식을 요구하고 따라서 교육도 갈수록 전문적으로 세분되는 경향이다. 오늘의 산업화된 사회는 우리 하나 하나가 하나의 전문적 기술자가 되기를 요청하고 우리를 기술자로서 경쟁시킨다. 치열한 기술적 경쟁에서 밀리면 우리는 사회에서 떳떳이 설자리를 찾을 수 없다.

아무리 기술이 필요하다 해도 그것은 삶의 전부가 아니다. 삶의 목적은 단순한 기술자가 되는 것에 있지 않다. 기술의 중요성은 그것이 삶의 질을 높인다는 데서만 이해될 수 있다. 우리가 하나의 기술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 자신도 어떤 기능이나 하나의 물건에 지나지 않음을 의미한다. 우리는 기능이기 전에 살아 있는 한 인간이며, 물건이기 전에 자유로운 주체적 인격체이다.

인격체로서 갖추어야 할 것은 교양이다. 그러므로 교양은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 누구나가 갖추어야 할 조건이다. 교양이란 인격적 존재로서 타고난 여러 가지 가능성의 개발을 의미한다.

인간에게는 '참'과 '거짓'을 따지는 지적 가능성, '아름다움'과 '추함'을 가르는 미적 가능성, '선'과 '악'을 분간하는 윤리적 가능성, '정당성'과 '부당성'을 자르는 논리적 가능성, '의미'와 '무의미'를 추구하는 종교적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가능성은 과학적 역사를 통해서, 예술사·문학사·철학사·종교사·정치문화사를 통해서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위와 같은 여러 측면의 인간 역사를 통해서 우리는 비로소 인간이 무엇인가, 내가 무엇인가 알 수 있으며 그런 앎은 우리의 삶을 그만큼 풍요하게 하고 보다 보람있는 방향으로 밝혀 준다.

역사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는 책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과거에 살았던 사람들과 만나고 그들과 대화를 나누고 그들로부터 배울 수 있다. 책은 귀중한 과거에의 창구이며 독서는 넓은 세계와 새로운 삶과의 접촉이다. 올바른 독서를 통해서만이 지금 당장 이 자리에서의 고립된 우리가 아니라 보다 넓은 세계 안에서 영원으로 이어지는 인류 역사 안에서의 우리 존재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그러므로 올바른 독서는 해방인 동시에 빛이다. 어찌 책을 접어 던지고 디스코 장에 가서 동물적으로 엉덩이만 흔들고 시간을 낭비할 수 있겠는가. 독서는 귀중하다.

그렇다면 어떤 책을 읽어야 하나. 만일 내가 전문대학에 있든가 아니면 내 전공과목이 극히 기술적인 분야라면 적절한 선택이 더욱 절실하다.

나는 우선 읽지 않겠다는 종류의 책들을 들고 싶다. 유행에 아부하고 시대나 사회 분위기에 편승하여 언뜻 보아 화끈하지만 내용이 없고 두서없이 자극적이거나 선동적인 책들, 흔히 베스트셀러라는 책들을 피하겠다. 교조적이거나 도식적인 생각을 반복하는 책, 설교적이거나 구호적인 책도 보지 않겠다.

요새 수필이란 명목으로 쏟아져 나오는 대부분의 글도 피하겠다. 그것들은 신변잡기 아니면 어린 소녀들의 신경에 영합하는 극히 간지러운 감상적 글이거나 혹은 어린 청소년들의 피부적 감각을 자극할 뿐이다. 선동적이거나 설교적 책은 사고의 논리적 기능을 마비시키기 쉽고 신변잡기적이거나 감상적인 수필들은 감수성의 질을 피상적으로 만든다.

나의 우선적인 독서 목적은 정보적이 될 것이다. 나는 인간에 대한 객관적 지식을 필요로 한다. 인간이 어떻게 살아왔으며, 무엇을 해 왔고, 무엇을 추구해 왔는지를 전문가가 아니라 교양인으로서의 나에게 알기 쉽게 쓰인 책을 읽겠다. 이 목적을 위해 역사에 관한 책을 많이 읽겠다. 특히 정치사회사·종교사·과학사·문화사·인류학에 초점을 두겠다. 이러한 책들을 통해서 그 동안 인류가 자연과 인간, 죽음과 사회에 대해 얼마만큼 깊고 다양한 생각을 해 왔고,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얼마만큼 많은 노력과 투쟁을 해 왔었던가를 배울 수 있을 것이다. 다양한 역사적 지식은 나에게 세계와 인간, 삶의 의미를 보는 눈을 크게 열어 준다.

나의 두 번째 독서 목적은 개발적이다. 사물에 대한 지각적 감수성, 아름다움에 대한 미학적 감수성, 선과 악에 대한 도덕적 감수성을 개발하여 키우고 가다듬고 싶다. 여기서 나는 문학작품과 만난다. 오락적이고 상품적이기만 한 쓰레기 같은 것에 문학이라는 이름을 붙인 작품들이 허다하고, 깊이도 없고 재미도 없는 작품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역시 적지 않은 위대한 문학작품들은 우리에게 사물을 신선하고 섬세하게 볼 수 있는 눈을 개발해 주고, 현상의 아름다움을 생생하게 느끼고 감상할 수 있는 감수성을 개발해 준다.

그리고 위대한 문학은 세계와 인생을 철학적인 깊은 차원에서 생각하도록 유도하고 특히 도덕적 감수성을 심각하고 숭고한 차원으로 고양해 준다. 많은 문학작품을 읽어야 하겠다. 그러나 문제는 세계적 걸작만 해도 수없이 많다는 것이다. 문학 전문가가 되려고 하지 않는 이상 나는 그 가운데 극히 적은 수의 작품밖엔 읽을 수 없다. 내가 보다 가까운 관계를 느끼기 위해서 될수록 현대 작품부터 읽기 시작할 것이며 그 가운데서도 내 수준에 맞는 작품을 몇 권만 고르겠다. 다른 작품들이 무엇이든지 간에 도스토예프스키의 짤막한 <지하생활자의 수기>만은 꼭 읽겠다.

세 번째 나의 독서 목적은 훈련적이다. 논리적이며 철저하게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훈련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백과사전 식으로 단편적인 지식을 아무리 많이 갖고 있거나 전자 지침판처럼 아무리 예민한 감수성을 갖고 있더라도 그것들이 정확한 논리에 의해 질서가 잡히지 않으면 그것들은 아직도 나 자신의 생각이 아니며, 그것들이 나 자신에 의해 정리되어 질서를 갖추지 않는다면 그것들은 아직 나 자신의 느낌이 될 수 없다.

철학은 심오한 진리의 제공이라기보다는 먼저 철저한 비판적 정신에 의한 정확하고 분명하고자 하는 논리적 사고의 시련이다. 철학 한다는 것은 소화하지도 못한 알 수 없는 개념들을 구호처럼 늘어놓는데 있지 않고 어떤 문제든지 확실하고 명석하게 철저히 이해하려는 노력이다. 그래서 나는 철학자의 이름이나 여러 가지 철학적 '주의'를 많이 외우는 데에는 아무 관심도 갖지 않을 것이다. 플라톤의 '공화국'이나 데카르트의 '방법론'만이라도 주의 깊게 인내력을 갖고 정독하면서 어떻게 한 문제가 근본적으로 제기되고 어떻게 그 문제에 대한 사고가 빈틈없는 논리에 따라 비판적으로 전개되는가를 배울 것이다.

그럼으로써 나는 사물을 단편적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혼돈 속에서가 아니라 체계적으로 보는 능력을 키울 것이다. 논리적이고 비판적 사고는 지식인으로서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도구이다. 그것은 도구적 유용성 때문만이 아니라 그 자체가 예술적 기쁨을 주기 때문이기도 하다.

내가 독서에 열중하는 마지막 이유는 '표현력'을 습득하려는데 있다. 혼자 아무리 깊고 논리적인 생각을 갖고 있어도, 혼자 아무리 풍부하고 신선한 느낌을 갖게 되어도 그것들이 적절하고 정확하게 표현되지 않으면 벙어리나 소경과 같다.

표현력은 어떤 종류의 책에서도, 신문의 몇 줄 안 되는 기사에서도 배울 수 있다. 간혹 가다 신문의 짤막한 사설에서 통찰력 있고 논리에 짜인 내용의 적절한 표현력을 발견한다. 철학자 러셀이 대중을 위해 쓴 수많은 에세이를 정독하며 나는 표현력을 기를 것이다. 신선하고 적절하며 생생하고 명쾌한 한 줄의 표현은 우리에게 예술 작품 이상의 즐거움을 준다. 4년간의 대학 생활은 바쁘고 짧다. 다시 찾을 수 없는 그 기간, 나는 위와 같은 독서에 최선을 다하겠다. 나는 하나의 기술자, 하나의 직업인이 되기 전에 자주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인간으로 살고 싶기 때문이다. 다시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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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줄리어스

채근담

2007/12/01 06:23
001.
棲守道德者,寂寞一時.依阿權勢者,凄凉萬古.
서수도덕자 적막일시 의아권세자 처량만고.
達人觀物外之物 思身後之身,
달인관물외지물 사신후지신
寧受一時之寂寞,毋取萬古之凄凉.
영수일시지적막 무취만고지처량.



사람의 도리를 지키며 덕을 베풀고 사는 사람은 한 때 외롭고 쓸쓸할 뿐이지만,
힘과 재물에만 의지하여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은 영원히 불쌍하다.
세상의 이치를 깨달은 사람은 눈앞에 나타난 사물 밖의 사물을 관찰하여
힘이나 재물이외의 진리를 생각하고 이 몸 뒤에 다시 태어나 받을 몸에 대해 생각하나니,
차라리 한 때의 외로움과 쓸쓸함을 견딜지언정 영원히 불쌍해짐을 취하지 않는다.



002.
涉世淺,點染亦淺.歷事深,機械亦深.
섭세천 점염역천 역사심 기계역심.
故君子與其達練,不若朴魯.與其曲謹,不若疎狂.
고군자여기단련 불약박로 여기곡근 불약소광.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마치 거친 물결을 건너가는 것과 같다.
세상살이의 경험이 얕으면 세상에 때묻는 것 또한 적고,
세상살이의 경험이 많으면 교묘한 수단으로 사람을 속이는 것 또한 깊어진다.
그러므로 참된 사람은 인생을 능숙하게 살기보다 정직하고 순박하게 살아가며,
치밀하고 약삭빠르게 살기보다는 어리석음을 취하여 소탈하게 살아간다.



003.
君子之心事,天靑日白,不可使人不知.
군자지심사 천청일백 불가사인부지.
君子之才華,玉■珠藏,不可使人易知.
군자지재화 옥온주장 불가사인이지.



참된 사람은 자신의 마음가짐에 꾸밈이나 거짓이 없어서,
하늘이 푸르고 태양이 빛나는 것처럼 누가 보더라도 그 마음을 곧 알 수 있게 하고,
자신의 재주나 지혜는 구슬이 바위 속에 감추어져 있는 것과 같이 하여
남들이 쉽사리 알게 하지 않는다.



004.
勢利紛華,不近者爲潔.近之而不染者 爲尤潔.
세리분화 불근자위결 근지이불염자 위우결.
智械機巧,不知者爲高.知之而不用者 爲尤高.
지계기교 부지자위고 지지이불용자 위우고.



이익과 세력 그리고 사치와 부귀를 가까이 하지 않는 사람을 청렴결백하다고 하지만
이것을 가까이하고서도 물들지 않는 사람이 더욱 청렴결백한 사람이고,
잔재주와 교묘한 방법으로 남을 중상모략하지 않는 사람을 고상하다고 하지만
이를 알면서도 사용하지 않는 사람은 더욱 고상한 인품을 지닌 사람이다.



005.
耳中 常聞逆耳之言,心中 常有拂心之事,總是進德修行的砥石.
이중 상문역이지언 심중 상유불심지사 재시진덕수행적지석
若言言悅耳 事事快心,便把此生,埋在■毒中矣.
약언언열이 사사쾌심 변파차생 매재짐독중의.



공자가어(孔子家語)에 "좋은 약은 입에 쓰지만 병에는 이롭고,
진심어린 충고의 말은 귀에 거슬리지만 행실에는 이롭다." 하였듯이
귀에 항상 거슬리는 말이 들리고 마음속에서는 항상 마음에 어긋나는 일만 일어난다면,
이것이야말로 덕과 행실을 갈고 닦는 숫돌이 될 것이며,
만약 들리는 말마다 귀에 즐겁고 하는 일마다 마음을 흡족하기만 하다면,
이야말로 자기 몸을 매어 그 그림자만 지나간 음식을 먹어도 사람이 죽는다는
짐새의 독(毒)속에 자신을 파묻는 일이 될 것이다.


006.
疾風怒雨,禽鳥戚戚.霽日光風,草木欣欣.
질풍노우 금조척척 제일광풍 초목흔흔
可見天地 不可一日無和氣 人心不可一日無喜神.
가견천지 불가일일무화기 인심불가일일무희신.



거센 바람과 성난 비에는 새들도 조심하고,
갠 날씨와 따뜻한 바람에는 풀과 나무도 기뻐한다.
그러므로 하늘과 땅의 따뜻한 기운이 없다면 이 세상이 하루도 존재하지 못함을 알고,
사람의 마음에는 하루도 기쁨이 없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007.
醴肥辛甘 非眞味.眞味 只是淡.
농비신감 비진미 진미 지시담
神奇卓異 非至人.至人 只是常.
신기탁이 비지인 지인 지시상.



잘 익은 술, 기름진 고기와 맵고 단 것이 참 맛이 아니다.
참 맛은 다만 담담할 뿐이다.
신기한 재주를 부리고 별다른 뛰어난 모습을 보인다고 세상의 이치를 아는 사람이 아니다.
세상의 이치를 아는 사람은 다만 평범할 뿐이다.



008.
天地 寂然不動,而氣機 無息少停.
천지 적연부동 이기기 무식소정
日月 晝夜奔馳,而貞明 萬古不易.
일월 주야분치 이정명 만고불역
故 君子 閒時 要有喫緊的心事,忙處 要有悠閒的趣味.
고 군자 한시 요유끽긴적심사 망처 요유유한적취미.



하늘과 땅은 고요하지만 그 활동을 잠시도 멈추지 않으며,
해와 달은 밤낮으로 달리고 있지만 그 빛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그러므로 참된 사람은 한가로운 때에 다급함을 대비하는 마음을 가지고,
바쁜 때에도 여유 있는 마음으로 자신의 뜻을 되돌아본다.



009.
夜深人靜,獨坐觀心,始覺妄窮而眞獨露,每於此中,得大機趣.
야심인정 독좌관심 시각망궁이진독로 매어차중 득대기취.
旣覺眞現而妄難逃,又於此中,得大■■.
기각진현이망난도 우어차중 득대참뉴.



밤이 깊어 사람들이 잠들어 고요할 때
홀로 앉아 자기의 마음을 들여다보면,
비로소 허망한 생각이 흩어지고 참된 마음이 나타나는 것을 깨닫게 되고,
언제나 이런 가운데서 큰 진리를 얻을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이미 참된 마음이 나타났음을 느끼면서도
허망한 생각에서 벗어나기 어려움을 깨닫게 된다면,
또한 이 가운데서 참된 부끄러움을 느껴 얻게 되는 것이다.



010.
恩裡,由來生害.故 快意時,須早回頭.
은리 유래생해 고 쾌의시 수조회두
敗後,或反成功.故 拂心處, 莫便放手.
패후 혹반성공 고 불심처 막편방수.


은혜를 받고있는 그 속에서 재앙이 싹트는 것이니
그러므로 만족스러울 때에는 주위를 되돌아 보라.
또한 실패한 뒤에 오히려 성공이 따르는 수도 있는 것이니
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서 무작정 손을 놓지 말라.



011.
藜口■腸者,多氷淸玉潔.袞衣玉食者,甘婢膝奴顔.
여구현장자 다빙청옥결 곤의옥식자 감비슬노안
蓋志以澹泊明,而節從肥甘喪也.
개지이담박명 이절종비감상야.



명아주와 비름나물과 같은 들풀로 입을 달래고 창자를 채우는 가난 속에서도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의 마음은 얼음처럼 맑고 옥구슬처럼 깨끗한 사람이 많지만,
부귀를 탐내어 비단옷을 입고 기름진 고기를 먹는 사람 중에는
남에게 굽실거리며 종노릇하는 것을 달게 여기는 사람이 많다.
그러므로 사람의 마음은 청렴결백하여야 지조(志操)가 깃들어 밝아지고,
부귀를 탐내면 절개(節槪)를 잃게 된다.



012.
面前的田地,要放得寬,使人無不平之歎.
면전적전지 요방득관 사인무불평지탄
身後的惠澤,要流得久,使人有不■之思.
신후적혜택 요류득구 사인유불궤지사.



살아 있을 때는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사람들을 너그럽게 대하여
불평을 듣지 않도록 하며, 죽은 뒤에는 은혜가 길이 이어지게 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부족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013.
徑路窄處,留一步與人行.
경로착처 유일보 여인행
滋味濃的,減三分讓人嗜.此是涉世一極安樂法.
자미농적 감삼분 양인기. 차시섭세 일극안락법.



좁은 길에서는 한 걸음 물러서서 남을 먼저 지나가게 하고,
맛있는 음식은 혼자 먹지말고 일부를 덜어서 남들과 나누어 먹어라.
이런 마음이야말로 세상을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길이다.



014.
作人,無甚高遠事業,擺脫得俗情,便入名流.
작인 무심고원사업 파탈득속정 편입명류.
爲學,無甚增益工夫,減除得物累,便超聖境
위학 무심증익공부 감제득물루 편초성경.



사람이 뛰어나게 위대한 일을 한 것은 없을지라도
속된 욕정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그것만으로 이름이 헛되지 않을 것이요,
학문을 하는 사람이 비록 공부를 많이 하지는 못했다할지라도
물욕을 마음속에서 물리치기만 한다면
이것으로 능히 성인의 경지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015.
交友,須帶三分俠氣.作人,要存一點素心.
교우 수대삼분협기 작인 요존일점소심.



친구를 사귈 때에는 서로 넉넉히 도우려는 마음을 가져야 하며,
사람을 부릴 때에는 반드시 한 점의 순수한 마음을 지녀야 할 것이다.



016.
寵利,毋居人前.德業,毋落人後.
총리 무거인전 덕업 무락인후
受享,毋踰分外.修爲,毋減分中.
수향 무유분외 수위 무감분중.



혜택과 이익을 보는 것은 다른 사람보다 앞서지 말고,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하고 사람에게 덕을 베푸는 것은
다른 사람에 뒤떨어지지 말라.
남에게 받는 보수는 자신의 분수를 넘지 않도록 하고,
자신을 다스려 스스로 몸을 닦는 일은 자신의 분수에 넘치도록 행하라.



017.
處世,讓一步爲高.退步,卽進步的張本.
처세 양일보위고 퇴보 즉진보적장본
待人,寬一分是福.利人,實利己的根基.
대인 관일분시복 이인 실이기적근기.


세상살이에서는 한 걸음 양보할 줄 아는 것이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니,
그것은 한 걸음 물러서는 것이
곧 스스로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는 토대가 되기 때문이다.
사람을 대할 때는 엄격함보다 너그럽게 하는 것이 복이 되는 것이니,
이것은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이 사실은 자기를 이롭게 하는 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018.
蓋世功勞,當不得一箇矜字.
개세공로 당부득일개긍자.
彌天罪過,當不得一箇悔字.
미천죄과 당부득일개회자.



온 세상에 알려질 만큼 큰 공로를 세웠다고 할지라도
스스로 그 일을 자랑한다면 아무런 가치가 없을 것이며,
하늘에 가득 찰 만큼 큰 죄를 지었더라도
진심으로 깊이 뉘우친다면 그 죄는 용서받을 수 있을 것이다.



019.
完名美節,不宜獨任.分些與人,可以遠害全身.
완명미절 불의독임 분사여인 가이원해전신.
辱行汚名,不宜全推.引些歸己,可以■光養德.
욕행오명 불의전추 인사귀기 가이도광양덕.



이름을 좋게 알리고 착한 일을 할 때에는 혼자서 다 하려고 하지 말라.
조금은 남에게 나누어주어야 해를 멀리하여 몸을 온전히 보전할 수 있다.
욕된 행실과 이름을 더럽히는 일은 모두 남의 탓으로만 돌리지 말라.
조금은 끌어다 나의 책임으로 돌려야 지혜를 안으로 간직하고 덕을 기를 수 있으리라.



020.
事事 留個有餘 不盡的意思,
사사 유개유여 부진적의사
便造物 不能忌我,鬼神不能損我.
편조물 불능기아, 귀신불능손아
若業必求滿 功必求盈者,不生內變,必召外憂.
약업필구만 공필구영자 불생내변 필소외우.



모든 일에 어느 정도의 여유를 갖고 여지를 남겨 둔다면
하느님도 나를 버리지 못하고 귀신도 나를 해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만일 일마다 반드시 다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공들임마다 다 채워지기를 원하는 사람은
안으로 변고가 생기지 않으면 밖으로 근심을 불러들이게 되리라.



021.
富貴家,宜寬厚,而反忌刻.
부귀가 의관후 이반기각
是富貴而貧賤其行矣,如何能享?
시부귀이빈천기행의 여하능향
聰明人,宜斂藏,而反炫耀.
총명인 의렴장 이반현요
是聰明而愚 其病矣,如何不敗?
시총명이우몽기병의 여하불패



부귀한 집안은 마땅히 너그럽고 후해야 한다.
그러나 도리어 남을 시기하고 남에게 대하는 것이 각박하다면
이것은 부귀하면서도 그 행실을 가난하고 천박하게 하는 것이니
어찌 능히 그 부귀를 누릴 수 있겠는가?
총명한 사람은 마땅히 그 재주를 숨기고 감추어야 하는데
도리어 드러내어 자랑한다면 이것은 총명하면서도 어리석고
어두운 병폐에 빠져 있음이니 어찌 실패하지 않겠는가.



022.
居卑而後知登高之爲危.處晦而後知向明之太露.
거비이후지등고지위위 처회이후지향명지태로
守靜而後知好動之過勞.養默而後知多言之爲躁.
수정이후지호동지과로 양묵이후지다언지위조



낮은 곳에 살아 본 후에야 높은 데 올라가는 것이 위태로운 것임을 알게 되고,
어두운 곳에 있어 본 후에야 밝은 빛이 눈부신 줄 알게 된다.
조용한 생활을 해 본 후에야 분주하게 움직이기 좋아함이 수고로운 것임을 알게 되고,
침묵하는 것을 배운 후에야 말 많은 것이 시끄러운 줄 알게 된다.



023.
放得功名富貴之心下,便可脫凡.
방득공명부귀지심하 변가탈범
放得道德仁義之心下,■可入聖.
방득도덕인의지심하 재가입성



부귀와 공명에 얽매인 마음을 다 털어 버려야
비로소 평범하고 속된 것에서 벗어날 수 있고,
도덕과 인의에 얽매인 마음을 다 벗어 버려야
비로소 성인의 경지에 들어갈 수 있다.



024.
利欲未盡害心.意見乃害心之■賊.
이욕미진해심 의견내해심지모적
聲色未必障道.聰明乃障道之藩屛.
성색미필장도 총명내장도지번병



자신의 이익을 얻으려는 욕심이 다 마음을 해치는 것이 아니라,
고집스러운 독단적인 생각이 바로 마음을 해치는 해충이고,
애욕이 반드시 도를 가로막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총명하다고 보는 생각이 바로 도를 가로막는 장애가 되는 것이다.



025.
人情反復,世路崎嶇.
인정반복 세로기구
行不去處,須知退一步之法.
행불거처 수지퇴일보지법
行得去處,務加讓三分之功.
행득거처 무가양삼분지공



사람의 정은 쉽게 변하고 세상살이는 험난하다.
그러므로 나아가기 어려운 곳에서는
모름지기 한 걸음 뒤로 물러서는 법을 알아야 하고,
쉽게 나아갈 수 있는 곳에서도 적절히 양보하는 공덕을 길러야 한다.



026.
待小人,不難於嚴,而難於不惡.
대소인 불난어엄 이난어불오
待君子,不難於恭,而難於有禮.
대군자 불난어공 이난어유례

소인배는 엄하게 대하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너그러운 마음으로 미워하지 않는 것이 더 어렵고,
참된 분을 모실 때에는 공손하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공손이 지나쳐 비굴해지지 않도록 예절을 지키는 것이 더 어렵다.



027.
寧守渾■,而黜聰明,有些正氣還天地.
영수훈악 이출총명 유사정기환청지
寧謝紛華,而甘澹泊,有個淸名在乾坤.
영사분화 이감담박 유개청명재건곤



차라리 소박함을 지키고 총명함을 물리쳐
약간의 바른 기운을 남겨 천지에 돌려주고,
차라리 화려함을 사양하고 담담함을 달게 여겨
하나의 깨끗한 이름을 세상에 남기도록 하라.



028.
降魔者,先降自心.心伏,則群魔退聽.
항마자 선항자심 심복 즉군마퇴청
馭橫者,先馭此氣.氣平,則外橫不侵.
어횡자 선어차기 기평 즉외횡불침



악마를 항복시키려고 하는 사람은 먼저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라.
자신의 마음이 잘 다스려지면 모든 악마들이 스스로 물러갈 것이다.
남의 횡포를 누르려는 사람은 먼저 자신의 혈기를 다스리라.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다스려 평화로워지면
외부로부터 횡포가 침입하지 못할 것이다.



029.
敎弟子,如養閨女,最要嚴出入 謹交遊.
교제자 여양규녀 최요엄출입 근교유
若一接近匪人,是淸淨田中,
약일접근비인 시청정전중
下一不淨種子,便終身難植嘉禾.
하일부정종자 변종신난식가화



자녀를 가르치는 것은 마치 규중의 처녀를 기르는 것과 같으니
무엇보다도 출입을 엄하게 하고 친구를 조심해서 사귀게 하여야 한다.
만일 한 번 나쁜 사람과 어울리게 되면,
이것은 마치 깨끗한 밭에 잡초의 씨앗을 뿌리는 것과 같아서
한평생 좋은 곡식을 심기가 어려울 것이다.



030.
欲路上事,毋樂其便而姑爲染指. 一染指,便深入萬.
욕로상사 무락기편이고위염지 일염지 변심입만인
理路上事,毋憚其難而稍爲退步. 一退步,便遠隔千山.
이로상사 무탄기난이초위퇴보 일퇴보 변원격천산



정욕에 관계된 일은 쉽게 즐길 수 있을지라도 결코 손끝에 물들이지 말라.
한번 손끝에 물들이게 되면 곧 만 길 낭떠러지 아래로 굴러 떨어질 것이다.
바른 길에 관한 일은 비록 어렵더라도 조금이라도 뒤로 물러서서는 안 된다.
일단 한 걸음 물러서게 되면 천 개의 산이 앞을 가로막은 듯 멀어지게 될 것이다.





031.
念頭濃者,自待厚,待人亦厚,處處皆濃.
염두농자 자대후 대인역후 처처개농
念頭淡者,自待薄,待人亦薄,事事皆淡.
염두담자 자대박 대인역박 사사개담
故君子居常嗜好,不可太濃艶,亦不可太枯寂.
고군자거상기호 불가태농염 역불의태고적



마음이 두터운 사람은 자기와 남에게 모두 후하기만 하여 모든 일마다 두텁기만 하고,
마음이 담백한 사람은 자기와 남에게 모두 싱겁기만 하여 담백하기만 하다.
그러므로 참된 사람은 일상생활의 좋아함과 싫어함에 있어서
지나치게 두텁거나 적적하기만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032.
彼富我仁,彼爵我義.君子固不爲君相所牢籠.
피부아인 피박아의 군자고불위군상소뇌룡
人定勝天,志一動氣.君子亦不受造物之陶鑄.
인정승천 지일동기 군자역불수조물지도주



다른 사람이 부유함을 내세울 때 나에게는 어진 마음이 있고,
다른 사람이 지위를 내 세울 때 나에게는 의로움이 있다.
그러므로 참된 사람은 아무리 지위가 높은 사람에게라도 농락을 당하지 않는다.
사람이 머무를 곳을 안다면 하늘도 그 사람을 이길 수 없고
사람이 뜻을 하나로 모은다면 타고난 기질도 변화시킬 수 있다.
그러므로 참된 사람은 하느님이 정해 준 틀 속에 갇히지 않는다.



033.
立身,不高一步位, 如塵裡振衣 泥中濯足,如何超達?
입신 불고일보립 여진리진의 이중탁족 여하초달
處世,不退一步處, 如飛蛾投燈 ■羊觸藩,如何安樂?
처세 불퇴일보처 여비아투촉 저양촉번 여하안락



세상사람들보다 한 걸음 높은 곳에 뜻을 두지 않는다면,
먼지 속에서 옷을 털고 진흙탕 속에서 발을 씻는 것과 같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겠는가.
세상살이에서는 한 걸음 물러나 뒤쳐져서 살아가지 않는다면
불나방이 촛불에 날아들고 숫양이 울타리를 들이받다가
뿔이 울타리에 걸리는 것과 같으니 어찌 편안할 수 있겠는가.



034.
學者要收拾精神,倂歸一路.
학자요수습정신 병귀일로
如修德而留意於事功名譽,必無實詣.
여수덕이류의어사공명예 필무실예
讀書而寄興於吟■風雅,定不深心.
독서이기흥어음영풍아 안정심심



학문하는 사람은 모름지기 정신을 가다듬어 한 곳에 집중해야 한다.
만일 덕을 닦으면서도 마음이 일의 성공이나 이름 드러내는 것에만 있다면
틀림없이 참된 경지에 이르지는 못할 것이며,
책을 읽으면서도 읊조리는 맛이나 풍류에만 감흥을 느낀다면
결코 깊은 마음에는 이르지는 못할 것이다.



035.
人人有個大慈悲,維摩屠 ,無二心也.
인인유개대자비 유마도회 무이심야
處處有種眞趣味,金屋茅 ,非兩地也.
처처유종진취미 전옥모첨 비량지야
只是欲蔽情封,當面錯過,使咫尺千里矣.
지시욕폐정봉 당면착과 사지척천리의



사람마다 모두 하나의 큰 자비심을 가지고 있으니
깨달은 사람과 중생이 두 마음이 아니고,
사람사는 곳마다 모두 저마다의 참된 맛과 향기가 있으니
황금으로 꾸민 집과 초가집이 서로 다르지 않다.
다만 욕심에 덮이고 욕정에 가리워 한 번 잘못을 저지르게 되면
이것이 지척을 천리가 되게 하는 것이다.



036.
進德修道,要個木石的念頭.若一有欣羨,便超欲境.
진덕수도, 요개목석적염두, 약일유흔선, 변추욕경
濟世經邦,要段雲水的趣味.若一有貪著,便墮危機.
제세경방, 요단운수적취미. 약일유탐착, 변타위기



덕을 기르고 도를 닦으려면 목석과 같은 굳은 마음을 지녀야만 한다.
만일 부귀를 탐내어 부러워하는 마음이 일어나면
문득 욕망의 세계로 내닫게 될 것이다.
세상을 이롭게 하고 나라를 다스릴 때는
구름이 지나가고 물이 흘러가는 것같이 무심하고 담담한 취미를 지녀야만 한다.
만일 권력이나 명예를 탐내어 그것에 집착하는 마음을 지니게 되면
이내 위험한 지경으로 떨어지게 될 것이다.



037.
吉人無論作用安詳,則夢寐神魂,無非和氣.
길인무론작용안상, 즉몽매신혼, 무비화기
凶人無論行事狼戾,則聲音■語,渾是殺機.
흉인무론행사낭려, 즉성음소어, 혼시살기



좋은 사람은 일상적인 행동이 안락하고 자상하여서
잠잘 때 정신까지도 온화하지 않음이 없다.
그러나 악한 사람은 하는 일마다 사납고 비뚤어져서
그 목소리와 웃으며 하는 말에도 살벌한 기운이 섞여 나온다.



038.
肝受病,則目不能視.腎受病,則耳不能聽.
간수병, 즉목불능시. 신수병 즉이불능청.
病受於人所不見,必發於人所共見.
병수어인소불견, 필발어인소공견.
故君子欲無得罪於昭昭,先無得罪於冥冥.
고군자욕무득죄어소소, 선무득죄어명명



간이 병들면 눈이 보이지 않고 콩팥이 병들면 귀가 들리지 않는다.
병은 남들이 보지 못하는 곳에 들지만
반드시 남들이 모두 다 볼 수 있는 곳에 나타난다.
그러므로 참된 사람은 밝은 곳에서 죄를 얻지 않으려면
먼저 어두운 곳에서 죄를 짓지 말아야 할 것임을 안다.



039.
福莫福於少事,禍莫禍於多心.
복막복어소사, 화막화어다심.
唯苦事者,方知少事之爲福. 唯平心者,始知多心之爲禍.
유고사자. 방지소사지위복. 유평심자, 시지다심지위화



복은 일이 적은 것보다 더한 복이 없고,
화(禍)는 마음 쓸 일이 많은 것보다 더한 화가 없다.
그러므로 오직 일에 시달려 본 사람이라야 일이 적은 것이 복됨을 알고,
마음이 평안한 사람이라야 마음 쓸 일이 많은 것이 화임을 알게 된다.



040.
處治世,宜方.處亂世,宜圓. 處叔季之世,當方圓 用.
처치세, 의방. 처난세, 의원. 처숙계지세, 당방원병용.
待善人,宜寬.待惡人,宜嚴. 待庸衆之人,當寬嚴互存.
대선인, 의관. 대악인, 의엄. 대용중지인, 당관엄호존.



태평한 세상에 살 때는 마땅히 떳떳해야 하고,
어지러운 세상에 살 때는 마땅히 원만해야 하며,
평범한 세상에 살 때는 마땅히 떳떳하면서도 원만하여 적절하게 처신해야 한다.
선량하고 착한 사람을 대할 때는 마땅히 너그러워야 하고,
악한 사람을 대할 때는 마땅히 엄격해야 하며,
평범한 보통 사람을 대할 때에는 마땅히 너그러움과 엄격함을 함께 지녀
적절하게 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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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줄리어스

눈물이 나는 오늘

2007/11/27 00:45
사용자 삽입 이미지


9살 난 딸을 살해하고 자살을 기도한 아비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POD&mid=etc&oid=055&aid=0000113696



도박장 개업을 하여 구속된 아비를 위해 판사에게 편지를 쓴 11살의 딸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POD&mid=etc&oid=001&aid=0001834410




오늘 2가지 뉴스를 보며 가슴이 너무도 답답하여
눈물이 핑 도는 것을 느꼈다.

사회의 한 쪽에서는 생활고를 비관한 지 아비가
9살 된 막내딸을 목 졸라 죽이는 사건이 발생했고,

또 사회의 어떤 곳에서는 PC를 이용한 도박장을
개업한 아비를 구명하기 위해 11살 된 딸이 판사에게
편지를 쓰는 신파극이 펼쳐졌다.

둘 다 법적인 책임을 물어 아비를 재판대에 세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엄연한 법치국가에서 법에 어긋나는
행위를 한 사람에 대한 법적인 처벌은 법치국가의 존립을
위해서도 꼭 행해져야만 한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본다면? 도덕적으로 본다면?
우리에게는 잘못이 없는 것일까?



나는 점점 자본주의가 발전되지 못하고 천민 자본주의로
퇴색되고 있음을 매 순간 깨닫는다.

거의 모든 분야에서 경쟁은 가속화되고 있으며
이러한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방법을 배우지만
어느 누구도 패자에 대한 관심과 새로운 기회의 부여에는
눈을 돌리지 않는다.

학사 4년 동안 매 학기 마다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경영전략에
대해 끊임없이 배웠지만 경쟁에서 뒤처진 사람들에 대해서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배우지 못했다.

단지 우리는 경쟁에서 진 이유에 대해서 '승자보다 못한' 이라는
이유를 대며 개선할 점을 시사한다. SWOT 니 사례 분석이니 하는 것들은
껍데기만 좋은 것 뿐이다.

승자 독식의 시대에서 한 발 앞서 나간 승자는 다른 분야의 먹이들마저
포식해 버리고 만다. 처음의 경쟁에서 떨어져 나간 이들은
새로운 경쟁의 기회조차 박탈을 당하여 도태된다.

어찌 생활고를 비관하여 딸을 목 졸라 숨지게 만든 아비에게
"열심히 살려고 노력을 해보지 그러셨어요?" 라는
'절망'적인'희망'의 메세지를 남길 수 있는가?
노력을 위한 기회를 우리는 그에게 제공하였는가?


더욱 더 겁이 나는 것은
이런 사회 문제에 대해서 안일한 태도를 보이는 우리를 질책할 때

'내 앞가림도 못하는데 남 걱정은 해서 무얼 하누?' 라는 마음이
나도 모르게 들 때가 있다는 것이다.

두렵다. 점점 경쟁이 사회를 이루는 근본으로 자리를 잡게 되면서
승자에만 촛점이 맞춰지고, 또 승자가 되기 위한 노력만을 하게 될 때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되는 패자들은 그 설 자리를 점점 잃게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들에 대한 새로운 기회와 기존의 승자를 위협하는 또 다른 도전이
건전하게 이뤄지지 못하고 승리 후 무한 독식으로 경쟁력을 잃고
크기만 커져가는 비만 체형의 승자들이 사회를 득세할 때,

자본주의는 그 빛을 잃게 될 것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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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줄리어스

선택의 기로에서

2007/11/26 20:20
우리는 늘 선택의 기로에 선다.

스스로 의식하지 못한 채 선택이 이뤄질 수도 있고,
철저하게 계획된, 또 의도적인 선택이 결정될 수 있다.

가끔은 선택한 것들을 실천에 옮기지 못하는 상황도 있다.

수없이 많은 선택과 그 실천의 과정 속에서
우리는 얼마나 '신념'에 근접한가를 사유하고 있긴 한 것일까?


내게 신념이란 옳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행동하는 것이다.

만약 어떤 큰 기대를 할 수 있는 선택이 올바르지 않은 일이라면
다시 말해 내게 가치 있지 않다고 여겨지는 것들을 행함으로써
얻게 되는 혜익이 무척 커서 혼란스러워 질 때,


그 때 나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철부지 동생은 더러워도 해야 된다고 말을 했지만
나는 어제처럼, 오늘도 안된다 하였고, 내일도 그러할 것이다.



What is the most important thing in your life?
중학교 교과서에 나온 문장을 아직도 난 외우고 다닌다.

What is the most important thing in your life?
What is the most important thing in your life?
What is the most important thing in your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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