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감상에 있어서 푼크툼과 스투디움이란 것이 있다.
스투디움은 사진에 담긴 것들이 보편적으로 코드화가 되는 것이고
푼크툼은 각 감상자 개인에게 특별한 의미가 되는 세부적인 것이다.
예를 들어 아름다운 여성의 사진이 있다고 하자.
스투디움은 '아름답다', '표정이 좋다', '세련된 느낌이다.' 등으로 해석된다.
반면에 푼크툼은 그 사진 속 여성이 낀 반지가 지난 날 헤어졌던
자신의 애인이 끼던 그것과 동일해서 속상한 마음, 그리운 마음이 들 때
이를 스투디움이라 한다.
사진을 해석할 때 스투디움은 너무 주관적인 감정이 개입되어
전체적인 큰 틀을 읽지 못하는 오류를 범할 수 있으나
분명 사진은 예술이고, 이는 하나로 정의할 수 없는 수 많은 감정을
일으킨다는 점에서 간과되어선 안되는 부분이다.
나는 이 사진을 참 좋아한다. 지구소년이라는 애칭을 가진 김동관씨의
사진들을 보면 대단히 인상적이고 강렬한 느낌에 주눅이 들고 만다.
사실 이 자리를 빌어 밝히건데, 나는 김동관 작가의 사진에 많은
모티브를 받았으며 표절(?)한 것도 있다.
사진 속 그녀가 누구인지는 평생 알 수 없겠지만,
그녀가 누구든 간에 난 사진 속 그녀를 사랑한다.
흐트러진 머리칼 속에 정체된 그녀의 얼굴,
그 안의 부드러운 시선, 온화한 코와 입체감이 느껴지는 이마,
살짝 벌어진 입술에서 느껴지는 性적인 긴장감.
아아, 아름답다. 에코가 쓴 '미의 역사' 를 읽으며,
끌로드 모네의 그림을 보며,
나는 사진 속 여성의 아름다움을 생각했다.
내가 이토록 그녀에게 끌리는 진정한 이유는, 푼크툼은
한 가닥의 머리칼 때문이다.
프레임 상단으로 포커스 아웃(focus-out) 된 한 가닥의 머리칼은
지난 날 내 꿈 속에서 흐릿하게 얼굴을 비치며 따스한 손길만을
알려 준 채 무심코 떠나 버린 그이와 너무도 흡사한 느낌이 든다.
사진 속 그녀도 날 보며 이별을 말하는 듯하다.
오늘 많은 사람들 속에서 완전히 날 차단시키고 내면에 몰입하고 있었을 때,
나는 그녀를, 그녀만을 생각했다. 나의 침묵과, 고독과 그녀가 어떤 상관성을
가진 것인지를 나는 알 수가 없다. 불현듯 생각나는 그녀가 왜 그 때 생각났는지를
고민하는 것보다 그저 눈 감고 흐릿한 그녀의 잔상을 떠올리는 것이 중요했으니까.
아름답다. 그리고 나는 사랑한다. 아름다운 것을. 갖지 못하는 너의 아름다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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