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신경과학자들이 철학에서 말하는 자아는
뇌의 화학물질과 전기적 신호의 자극에서 비롯되는 것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 한다.

비단 자아뿐만 아니라 인간이 갖는 모든 사유는
전기적 신호의 반응일 뿐이라는 쓸쓸한 사실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읽은 나는, 또 위험한 생각들에서 과학자들이 말하는
인간의 유한한 모습, 그 한계적인 모습에서 형이상학적인 사유를 하는 것은 사치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사랑에 대해서 한 가지 꼭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

많은 철학자들, 그 중에 염세주의적인 이들은 사랑이 단지 종족 번식을 위한 섹스의 과정으로 연결시키는
유전자적인 반응일 뿐이라 말한다. 포르노 배우와 애인을 볼 때 나타나는 남성의 신체적 변화가 동일하다는 실험은
타당성적인 부분에서 오류가 보이긴 하지만, 어쨌든 결국 사랑은 성욕이고 도파민의 분비로 인한
특정한 느낌일 뿐이라고 입을 모은다.


사랑, 정욕과는 다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다.

만일 사랑하는 사람이 동성이라면? 물론 오르가즘을 위한 섹스가 존재하긴 하지만 종족번식과는 전혀 상관성이 없다.
혹자는 동성연애야 말로 순수한 의미에서의 사랑과 가장 근접하고도 말을 하는데 절반은 동감하고 절반은 유감스럽다.

정욕과 사랑은 구분되어야 한다. 섹스를 위한 감정은 정욕일 뿐이다. 종족번식을 위해서
상대방을 찾고 호르몬의 과분비, 성적인 흥분과 사정, 그리고 근육의 이완에서 오는 오르가즘은 정욕에 불과하다.

죽은 아내를 그리워하며 수십 년 간 여전히 망자를 잊지 못하고 사랑하는 이는 어떻게 설명해야만 하는가?

설령 자신의 종족을 번식시켜 줄 '더 나은 여성' 을 찾지 못한 이기적 유전자에 의해서 성립되는 현상이라고
과학적으로 풀이한다고 할 지라도,

우리는 형이상학적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만약에 사랑이 정욕과 다름이 없고 단지 섹스가 주어인 문장의 형용사로서 사랑이 존재하는 것이라는 과학적 사실이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넘어서는 사랑, 필로아적인 사랑, 순수함에 닿은 사랑을 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자아가 단지 뇌의 전기적 신호에 의한 망상일 뿐이라면 왜 그렇게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자아를 찾기 위해
삶의 본질을 사유하고 괴로워하는 것일까? 그저 헛개비에 불과하다면 그런 소모전은 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슬픈 사실이 있다. 만약 육체적 사랑이 전제되지 않고 정신적인 사랑만을 강요하게 된다면
사람이 아닌 동, 식물에 대해서도 "사랑"이 성립되게 된다. 그러기에는 범위가 너무 광의적이다.
플라톤도 죽기 전에는 육체적 사랑이 밑바탕이 되지 않는 정신적 사랑은 불신하지 않았는가?



이상주의자, 염세주의자, 과학신봉자, 회의주의자. 이런 이성적인 입장에서 한 발을 빼고 사랑을 보자.


우리의 존재를 사람답게 살게 만드는 힘이 자아가 아니던가?
우리를 세상과 소통하게 만드는 힘이 사랑이 아니던가?

섹스가 무엇이든간에, 설령 섹스가 사랑의 주를 이루는 요소이든간에, 사랑은 순수해야 한다. 그 순수성에 대해서
정욕이 단어를 더럽히지 않도록 정신적인 교감이 견제를 해야만 할 것이다.



사랑을 정의하기란 쉽지 않다. 기껏해야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영혼의 사랑은 지배의 열정이고 정신의 사랑은 동정이며,
육체의 사랑은 많은 비밀이 있은 후에 사랑의 대상을 소유하려는 은밀하고도 미묘한 욕망일 뿐이다.
아아, 얼마나 멋진 말인가. 라로슈푸코의 말. 줄리어스도 이 말에 동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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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줄리어스
연애는 언제나 종족의 번식을 위한 본능에 따른다.
남성의 사랑은 성관계를 가진 순간부터 뚜렷이 식어버려 자기 손에 넣은
여성보다 다른 여성이 나아 보인다.
그래서 남성은 언제나 여성을 바꾸고 싶어하지만, 반대로 여성의 사랑은 성관계를 끝낸 순간부터 커진다.
이것은 자연이 종족의 유지와 되도록 많은 번식을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남성은 사정이 허락되면 1년에 100명이 넘는 자식을 낳을 수 있으나,
여성은 아무리 많은 남성을 상대해도 쌍둥이를 제외하고는 1년에 1명이상 낳을 수 없다.
그래서 남성은 언제나 다른 여성을 탐내나, 여성은 한 남편에게 충실히 의지하려 한다.
이는 자연이 본능을 통하여 그렇게 무작정 강제하는 것이다.

- 쇼펜하우어, 인생론




쇼펜하우어가 간과한 것은 사랑이 사랑을 하는 대상들을 맹목적으로 만들어서
서로의 부조화가 보이지 않게 된다는 사실이다.

만약 쇼펜하우어의 말마따나, 섹스를 위해서 - 종족번식을 위해서 이성을 만나는 것이라면
불임인 여성과 결혼하는 남성은 어떻게 설명을 해야 될까?

상대방의 외모가 아름다워서, 또는 성격, 재력 등에 의해서 사랑을 시작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닐까?
그런 것으로부터 비롯되는 사랑은 무릇 그것이 끝나버릴 때 종결되기 마련이다, 아니 그럴까?

하지만 간과해선 안되는 사실은 비단 특정한 원인으로부터 시작된 사랑이라고 할 지라도
그것이 맹목적으로 되어서 상대방의 부조화를 인지할 수 없게 될 때 사랑이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주 아름다운 여성을 사랑하게 되었으나, 그 외모를 잃었을 때 사랑이 종결되지 않는다면
어떤 특정한 다른 원인에 귀속되었다고 판단할 수도 있겠지만!

사랑의 본질인 "순수함" 에 다가선 것은 아닐까?


사랑을 너무도 형이상학적으로, 철학적으로 분석하는 것은 어리석어 보인다.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동기와 욕구라는 과학적인 실험 결과 앞에서 사랑에 대한 나의 사유는 힘을 잃어 버리지만,


톨스토이가 그랬지 않는가. 사랑에 대한 논의는 언제나 사랑을 파괴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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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l of city

2008/03/24 02:48
시에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나도 오늘 머리카락을 자르고 싶었지만
비가 와서, 또 바빠서, 또 아쉬워서, 또. 그래서 자르지 못했다.
당신은 잘랐다는데, 떨어지는 머리카락에 우리 사랑도 떨어지는 것인지.
머리카락이 많이 길어서 이제 헤어질 때가 되었다는 나의 농담이
참말이 되어 버린 것인지. 도시에 내리는 우울한 비에 재즈 한 곡조 태워서
잔에 담아 마시면 울컥해져 당신 생각으로 난 또 몸서리를 치겠지.
너무나도 태연한 모습으로 날 바라보는 당신에게 무한한 공포를 느끼면서
왜 절실한 마음으로 대하지 못하냐며 나는 당신을 다그치겠지.


래, 사라져 버려라. 대지 위에 고인 빗물을 걷어 차며 나는 슬픔을 배설한다.
벌겋게 치밀어 오르는 분노, 역겨운 향이 나는 불쾌함, 너무 단 그리움.
청바지에 스며드는 배설들이 내 살갗에 닿을 때 여전히 나는 공허한 마음에
존재의 부재로부터 비롯되는 막막한 상실감이란 칼 끝을 꽂는다.

후문 앞 공터에 핀 개나리의 노랑이 내 병을 도지게 한다.
삶이 비극으로 가득 차 있다. 숨 쉴 때마다 비극의 기운을 길게 내 뿜는다.
도시의 꺼지지 않는 불빛처럼, 도시의 영혼은 지금도 그 자리에 있다.


어지고 있는 이 시간에도 너와 나, 도시의 영혼은 지금도 그 자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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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줄리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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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카를 보고 있느라면 名品 이란 것은 이것을 두고 말하는 것임을
절실히 깨닫는다. 티타늄 바디의 탄탄함과 정교하면서도 둔탁하지 않고
매끄러우면서도 흐트러짐이 없는 디자인에서 왜 사람들이 이런 것을
수 백만원의 비용을 지불하며 구입하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해소된다.


라이카는 단지 사진을 찍기 위한 카메라가 아니다. 그 이상의 무언가가 존재한다.
혹자는 이를 두고 감성이니, 가치니, 역사 등의 단어를 갖다 붙인다.
나는 이 문제에 대해서 아무리 고민을 해보아도 정확한 답을 대지 못하겠다.
감성도, 가치도, 역사도 모두 맞는 말 같다. 따라서 하나의 단어만으로 정답을
대는 것은 너무도 힘든 일이다. 어쨌든 빨간 원안의 LEICA (LEITZ) 는
특별한 매력이 있는 것이다. 앙리 까리띠에 브레송, 로버트 카파, 엘라이 리드가
목에 걸고 다니면서 보여줬던 그 빨간 동그라미가 이제 내 목에 걸려져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사진 찍는 재미 이상의 쾌감을 준다. 멍청하게도 이런 쾌감이
예술적인 환희와는 전혀 상관없는 것이고 무척 유치하며 나의 사진적 수준의 바닥을
여과없이 보여주는 부끄러운 것임이 틀림없지만, 좋은 건 좋은 거다.


캐논의 SLR 을 쓰면서 렌즈의 조리개 수치에 대해서 많은 집착을 하였다.
단렌즈는 최소 1.4 의 조리개, 줌렌즈는 2.8 의 조리개 값에 대한 고집은
비싼 L 렌즈만을 고집하게 만들었다. 과연 조리개 수치가 보장하는 결과물의 값은 어떠한가?
35MM 1.4 L 렌즈를 쓰면서 최대 개방에서의 깨끗한 해상력에 "역시 대단한 놈이군." 이라며
잘 샀다고 스스로 격려한 적이 있다. 하지만 라이카 35MM 즈미룩스(F 1.4)의 글로우(GLOW) 를 보며
사진의 개방 심도는 정말 필요 없는 것임을 느낀다. 심도를 넘어선 결과물의 환상적인 표현력을
보며 어찌 라이카가 세계 최고의 렌즈임을 동의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또 즈미클론(F 2.0)의 흑백사진에서의 계조를 보면서 마치 갓 눈이 내려 아무 흔적도 없는 산을
맨 먼저 보드를 타고 내려 올 때 갖게되는 처녀성의 획득이라는 묘한 기분을 느낀다.
즈미클론의 흑백 계조는 촬영자인 나만이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셔터를 누르는 순간의 기대되는 결과물의 계조를 완벽하게 표현하였는지에 대한 여부는
오직 나만이 알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기대를 철저하게 지켜주는 렌즈가 즈미클론이다.
나만이 본 것, 나만이 기대하는 것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또 실망 없이 완벽하게 표현해 준다.
일포드 필름 위에 투영되는 빛은 모두 즈미클론을 통한다. 그래서 즈미클론. 그래서 라이카.


어디 그 뿐이랴, 1세대부터 현행(CURRENT) 세대의 렌즈까지. 같은 35MM 2.0 렌즈라고 할 지라도
세대 별로 그 느낌이 다르다. ASPH(비구면렌즈) 의 현행은 색감도 좋고 해상력도 좋다.
확실히 올드렌즈는 현행렌즈에 비해서 해상력이 떨어진다. 하지만 라이카는 캐논의 그것처럼
MTF 차트를 올려 놓고 해상력을 따지지 않는다. 색 표현력과 계조의 재현력을 본다.
해상력은 기본적으로 우수하다는 전제가 깔려 있어서 그런 것일수도 있고, 설령 약간 BLUR 하다는
느낌을 최대 개방에서 받을지라도 이 또한 결과물의 매력으로 포장을 해 버리는 라이카 유저들에 의해서
가려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또 흑백 결과물은 현행 렌즈가 올드 렌즈의 값을 넘지 못한다.
오래된 렌즈라고 해서 천대를 받지 않는다. 오히려 현행보다 더 인기가 좋다. 그래서 라이카.


라이카 M7 에 35MM 즈미클론 ASPH 를 물려 놓고 있으면 하나의 예술품이란 생각마저 든다.
사진기가 뿜어 내는 사진보다 그 메커니컬 자체만으로도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해서
오묘한 아우라에 수준 낮은 나의 결과물들이 미안스럽다고 생각될 정도로 때로는 열등감도 느낀다.


라이카를 쓴다는 것은 35MM 의 역사를 쓴다는 말이 있다. 135포맷, 설령 SLR 이 아닌 RF 라고 할 지라도
그 말이 맞는 듯 싶다. 왜 오랜 세월동안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라이카를 사용하고 또 사랑하는지
나도 이제는 조금은 알 것 같다.


LEITZ, CAMERA, ..... LE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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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줄리어스

Woman with a Parasol

2008/03/10 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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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모네의 이 그림을 처음 실제로 보았을 때의 그 느낌은 아직도 생생하게 느껴진다.
내 몸의 한 곳도 빠지지 않고 흐르던 전기적인 신호는 나로 하여금 이 그림을 사랑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얼마나 오래 보았던가? 두 다리가 저리고 목이 뻐근할 즈음에, 다시 말해
그림을 통해서 생성되는 신호 이외의 다른 추가된 신호가 날 그만 가자고 각성할 때에
비로소 나는 그림에서 눈을 뗐다. 그러나 내가 뗀 것은 눈일 뿐, 여전히 내 마음은 그림을 향해 줄곧 서 있다.

그 때 내 옆에 있었던 MJ 는 그림 속 카미유같은 존재였다. 비록 우리에게 쟝은 없었을지라도
빛을 사진으로 그리는 나는 클로드 모네였고, 그녀는 나의 모델인 카미유였다.
그리고 "이것은 당신의 초상화군요" 라고 말하자 그녀는 완벽하게 그 말을 이해한 것처럼 보였다.

그림에서 동기를 받아 오마쥬로서의 사진을 찍고 싶었다. 나는 모네였고, 카미유가 옆에 있었으며,
좋은 빛만 있었다면 나는 그러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리지 못했다. 찍지 못했다.
내일의 이별도 모르면서 영원을 기약하는 오만방자한 내 사랑의 유예기간이 끝나 버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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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미유가 죽자 모네는 다른 이와 결혼을 한다. 그리고 그의 딸, 엄밀하게 말하자면 그녀의 딸인
쉬잔을 그린다. 까미유가 죽은 지 7년이 지난 어느 날,
모네는 까미유를 생각하며 딸을 모델로 삼아 추억과 그리움을 붓으로 담는다.

하지만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까미유의 얼굴이 기억이 나질 않았던 것일까? 아니면 그녀에 대한 존경이었을까?


계절은 다시 봄이 되었다. 그와 내가 다시 만난 날도 어느 따스한 봄날.
봄의 기운을 머금은 좋은 빛들이 창가를 통과하여 내 뺨에 드리운다.
눈을 감고 열기를 느낀다. 아직은 내가 살아 있구나.

다시 또 누군가를 만나서 사랑을 계약하겠지.
그 때도 영원을 약속하는 오만한 내 사랑은 변함이 없을 것이야.

하지만 까미유는, 까미유는 내게 당신 하나 뿐.
좋은 빛과 아름다움과 사랑이 공존하는 순간을 향유하는 까미유는 내게 당신 하나 뿐.


봄날에, 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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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줄리어스

폭풍의 언덕

2008/03/09 23:29
사랑하는 마음은 불쑥 내리는 여름날의 소나기처럼
예고도 없이 찾아와서 피할 수 없게 만든다.

비에 젖어 감기에 걸리는 것처럼
무책임한 사랑도 마음을 병들게 한다.

사랑한다 말하면 떠나 버리고
사랑한다 말하지 아니하면 떠나 버리고
사랑한다 말해도 떠나 버리고

만날 사람은 다 만나게 된다지만
이별할 사람도 다 이별하게 되는 것인가?

어찌 내일 이별할 것도 모르면서
영원을 약속하는 오만함으로 무장한 채
사랑한다 말할 수 있는 것인가?




그의 집 앞에서 오늘도 돌아오는 길에
신호등의 수를 세며 지친 한 숨을 길게 몰아 내쉰다.

그래도 마찬가지다. 그래도 외롭고 그리운 것은 매 한 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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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줄리어스

모든 것들은 그대로

2008/03/09 23:28
나와 당신을 위해 존재하던 모든 것들은 그대로 있네
잘 다려진 빨간 스트라이프 셔츠도
귓가를 맴도는 목소리도
마음을 아프게 만드는 그 씁쓸한 기억들도

나와 당신을 위해 존재하던 모든 것들은 그대로 있네

그런데

안녕이라 말하며 인사를 건넬 때
어색한 음을 띈 적막한 대기가 피부에 와닿는 것일까

그런데

커피콩을 한 손 가득히 쥐어 향을 맡아보고는
시간이 정지해 버리는 것일까


나와 당신을 위해 존재하던 모든 것들은 그대로 있네


그런데

불현듯 우리 둘만 사라져 버렸음을 서서히 알아채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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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줄리어스

슬픔이여 안녕

2008/02/17 06:03
항상 겨울의 끝자락이 오면 나는 외로워진다.

작년에도, 그 이전에도, 어김없이 올해도
나는 외롭다.

몇 해 전에는 에쿠니 가오리의 책을 읽었고
올해 나는 마르케스의 책을 읽었다.
그것들은 나의 외로움을 달래 주지 않는다.
타들어가고 말라 비틀어진 내 마음의
앙상한 나뭇가지 위에 장식하는 종처럼
어울리지도, 존재근거도 느끼질 못한다.

벽에 기대어 있는 스노보드를 보며
누구와 탈지를 고민한다.
그녀와 만나고 있을 때는 당연히 그녀와
갔을 스키장이지만 지금은 누구와 가야 하는가?
나는 그녀가 없이는 스키장도 못가는 어리석은 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혼자 지내길 바래왔었단 말인가?

나는 다른 남자들이 이별을 말하면서
"나보다 더 좋은 남자를 만나길 바란다." 또는
"나는 네게 너무도 부족한 사람이라서 헤어진다." 라는
터무니 없는 변명에 대해서 코웃음이 난다.
대학 친구가 이런 변명을 하며 헤어짐을 전하였다고
내게 말하였을 때, 나는 이렇게 답했다.

"너는 직장에 면접을 보러 가서 면접관에게,
'옆에 있는 사람이 저보다 더 잘 일할 것 같으니 이 사람을 뽑아 주십시오.'
라고 말해라."

착한 역할, 아니 착한 척은 하고 싶지 않았다.
더는 사랑을 못할 것 같았고 그 사람도 날 더이상
사랑하는 것이 쉬운 것이 아니란 걸 우리 서로는 알고 있었다.

더이상 서로의 마음에 낼 생채기도 없음을,
아주 가늘고 약한 끈에 의지하고 있었던 우리 관계의 마지노선이
그 필요성을 잃어 버리고 이제 멀어져야 함을 우리 서로는 알고 있었다.

어떻게, 언제, 누가 이별을 당당하게 말할 지를 고민해야 했다.

CANT 냐, DONT 냐의 질문. 사랑이 동나서 멈춰버린 우리의 자동차에
연료를 주입하지 못하냐, 혹은 않느냐에 대해서 나와 그녀는 어떤 말을 할까?

감정이 과다될 때가 있다. 나는 이를 주의하려고 노력한다.
이 순간, 이 폭발하는 내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지게 되면
나는 무척이나 힘들어진다. 나를 감싸고 있는 모든 시간은
정지해 버리고 깊은 정적만이 남는다. 시각은 한 곳에 집중이 되고
그것이 흐릿하게 보일 때 즈음에는 청각이 반응을 한다.
음악소리가 귓가에서 크게 들리면 내 감각은 통제 가능한
범위를 넘어선 것처럼 보인다. 모든 감각에서 의미가 느껴진다.
보이는 것, 들리는 것, 만지는 것, 맡게되는 것, 그리고 상상하는 것이
나를 힘겹게 한다. 왜냐하면 언제나 내 감각의 종착역은 외로움이니까.
보이는 모든 것은 날 외롭게 하고 들리는 모든 것은 날 외롭게 한다.
혀 끝에 느껴지는 커피의 쓴 맛도 외롭고, 손 끝에 느껴지는 사진의
입자들이 날 외롭게 한다. 이 지긋지긋한 외로움. 외로움. 외로움.

카메라에 85MM 를 마운트하고 무작정 거리로 나선다. 시간은 새벽 2시다.
갑자기 엘리베이터의 등이 꺼진다. 완전한 어둠이다.
무섭지 않다. 지금 당장 엘리베이터가 추락한다해도,
두 번 다시 문이 열리며 빛이 스며 들지 못한다고 해도,
무섭지 않다. 어차피 나는 지금 어둠이니까.

사람이 많은 곳으로 간다. 그 속에서도 나는 여전히 공황 장애를 겪는다.
가로수 사이마다 불이 켜진 도로를 따라 아무런 생각을 두지 않으려 애쓴다.
그러나 창 밖으로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들,
아! 너도 지금 이 스쳐가는 시간에서 나와 멀어지며 살아가고 있구나.
"우리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또 나는 외로운 시간 속에서 살아가겠지만
또 당신도 그리운 시간 속에서 살아가겠지만

나도, 당신도, 그대도, 우리도, 모두 외로운 것을.
모두 외로워 사랑을 찾지만 결국 다시 외로워 지는 것을.
이 필연의 과정을 겪으며 살아가는 것을.


안녕, 외로움이여, 내 그리움이여,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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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줄리어스

김아타, atta kim

2008/02/06 11:05

얼마 전에 비칼 형이 브레송의 사진을 보며
이미 수십 년 전의 사진가가 찍은 이런 사진을
오늘의 우리는 따라하고 있다는 말을 했지요.

스냅의 '결정적 순간'으로서 브레송의 사진이
여전히 인기가 좋은 것은 아마추어들이
사진을 취미가 아닌 예술로 느낄 때
가장 먼저 발걸음을 내딛는 부분이 바로
스냅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을 합니다.

저는 좀 더 나아간 시선으로 현대 사진계의 사조로서
김아타 선생님을 소개하려 합니다.

김아타 선생님을 소개하기 전에
Andreas Gursky 를 언급할 필요가 있습니다.

Andreas Gursky 는 현대 사진 예술에 있어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작가입니다.
그의 작품 한 점이 10억원에도 팔린다니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시겠지요?

"대형사진은 Andreas Gursky 를 위해 발명되었다." 라고
할 정도로 그의 프린트는 대단히 훌륭합니다.

다큐멘터리처럼 보이지만 디지탈 작업을 거쳐서
거리감, 공간감 등을 작가가 의도한 바로 조작을 하기 때문에
순수 다큐멘터리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상업사진이라고 부르며 상당한 고가에 작품이 거래되고 있지요.

김아타 선생님께서도 현대 미술이 자본의 논리와 절대 무관하지 않고
자본주의 시장논리와 함께 간다고 말씀하셨지요.
작가들은 중용, 중도를 잘 지켜서 상업성과 작품성의 경계에서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기를 거듭 충고하셨습니다.

김아타 선생님을 뵈면 Andreas Gursky 와 닮은 꼴이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8x10 의 대형으로 촬영하여 180x200 으로 인화한 결과물도 그렇고
뉴욕에서 엄청난 인기를 받는 것도 비슷합니다.

세상 모르고 작가주의만 빠지는 것도, 돈에 미쳐 상업에만 빠지는 것도
옳지 않다는 입장도 비슷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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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김아타 선생님의 'on-air' 프로젝트입니다. 수 많은 인물들의 사진을 촬영한 후에
이를 합성하는 방법을 통해서 '인간' 이란 주제를 다룬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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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장 모두 '뮤지엄' 프로젝트의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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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뉴욕 타임스퀘어에서 촬영된 사진입니다. 역시 8x10 카메라로 촬영되었으며
8시간 장노출을 한 사진입니다. 노출 내내 카메라 뒤에 앉아서 제자인 아로가 주는
햄버거를 드시며 기다리신 모습이 생각나네요. 국내 사진 작품중에 가장 고가인 1억 9천만원(21만 달러)에
팔린 작품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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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뉴욕에서 촬영된 'On air' 프로젝트입니다. 존재하는 것은 모두 사라짐을 표현합니다.
고정되어 있고, 천천히 움직이는 것은 사라지는 것 또한 그리함을 나타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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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모택동의 얼굴을 얼음으로 조각한 후에 시간이 지남에 따라
녹아 버리는 얼음을 작품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권력의 부질없음, 인간의 죽음을 사진으로 말하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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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SEX 라는 제목의 작품입니다. 기존의 작업 방식과 비슷합니다.
뉴욕 갤러리에서 5천 3백만원에 팔린 작품이지요.




뉴욕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한국 사진작가로 김아타 선생님이 있습니다.
그 어떤 다른 작가도 요시 밀로 갤러리에서 전시를 할 수 없었습니다.
또 ICP 의 한 쪽 벽을 할애하여 대형 사진을 건 것도 놀라운 일입니다.
최고의 사진 전문 출간사 아파처(APERTURE)에서 책을 출간한 동양 유일의 작가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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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거제 출생
1997년 올해의 작가상
2000년 휴스턴 포토페스티벌 한국 대표
2001년 파이돈 선정 세계 100대 사진가
2002년 상파울로 비엔날레 한국 대표
2004년 아파처(APERTURE)에서 사진집 발행
2006년 뉴욕국제사진센터(ICP)에서 개인전을 연 최초의 한국 작가
2007년 도이체 보르세 포토그래피(유명한 사진작가 시상식) 후보 (아시아 최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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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2008/02/04 07:11
어느 날 문득 어머니의 손을 잡았을 때
어제의 곱고 부드러운 그것이
오늘은 검버섯이 핀 거칠고 늙어버린 손이라는 걸 알았다.
왜 이리 늙으셨냐고, 왜 이리 야위신건지
묻고 싶었지만 사실 나는 그 답을 알고도 모른척 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줄곧 내게 당신은 나의 뿌리라 하셨다.
세상의 모든 자식은 어미의 줄기요, 잎이라서
하늘을 향해 뻗어 나아가는 자식을 위해
어미는 더욱 더 고개를 숙인다 했다.


돌이킬 수 없는 시간에 대한 안타까움인지
혹은 이제서야 어머니의 사랑, 그 무한한 깊이의
한 척을 잰 것인지 나이를 점점 더 먹어갈수록
어머니를 생각하면 전보다 쉬이 눈물이 흐른다.


겨울바다 앞에서 술에 취해 하늘을 보니
수없이 많은 별들 속에서도 어머니의 짙은 그리움을
좇을 수 있었다. 그런 내게 어머니는 당신의 행복이 모습으로
그려진 것이 나라고 대답했다.


세월은 무던히도 흘러간다. 나란히 빠진 앞니를 보며 웃던 그 때로부터
사랑니가 나서 턱이 쓰라린 오늘로 쉬지 않고 달려왔다.
나는 어머니의 젊음을, 열정을, 자애를 먹고 살았다.
내 얼굴에 살점이 오르고 키가 커질수록 어머니의 등은 굽고 얼굴에는
주름이 생겨난다. 왜 나를 낳아 이리 날 고생을 시키냐는 말은 하였어도
봄의 햇빛과 가을의 오색단풍을 보게 해준 것이 고맙다는 말은 하지 못했다.


뼈에 사무친다는 말이 있다. 어머니란 세 글자는 나의 모든 곳에 사무친다.
움직일 때마다 심지어는 생각을 할 때 조차 사무친 당신에 대한 존경은
비수가 되어 가슴에 꽂힌다. 아아! 왜 이리 나는 못난 자식인가!


메마른 방바닥에 눈물 한 방울 떨어지며 나는 오늘도 그 속에서 어머니를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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